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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통해 이어진 종로 공간과 작가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④ 한무숙 장편 「역사는 흐른다」
변자형 기자 | 승인 2023.11.14 20:14

♬덜컹거리는 전철을 타고 찾아가는 그 길, 우린 얼마나 많은 것을 잊고 살아가는지♩… 단풍의 향연이 한창인 계절의 일요일 오전, 추억의 밴드 동물원의 「혜화동」을 흥얼거리며 4호선 혜화역에서 내린다.
(협)마을대학종로가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으로 진행하는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마지막 4차시 탐방지는 혜화동과 명륜동 일부 지역이다.

덕수궁 옆 정동교회와 이화여고의 경계 보도에 ‘보구녀관(普救女館)’ 표석이 있다. 미국 감리교 메리 스크랜튼(Mary F. Scranton) 선교사가 이화학당 인근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여성병원을 세운 자리다(1887). 보구녀관의 로제타 홀(Rosetta S. Hall) 의사는 내외(內外)의 구별이 엄격한 유교사회에서 여성 환자의 진료를 전담하는 여의사 양성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혜화동 아남아파트 자리에 조선여자의학강습소를 마련했다(1928).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의학교육기관의 탄생이다. 조선여자의학강습소는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서울여자의과대학, 수도의과대학 부속병원, 우석대학병원, 고려대학병원 등을 거쳐 발전하며 의료계를 이끌었다.
아남아파트 입구에 물이 많이 나서 바가지로 물을 푼 큰 우물이 있었다고 해서 이곳 동네 이름을 박우물골, 박정동(朴井洞)이라 불렀다. 맞은편은 궁안우물골 궁내정동(宮內井洞)이라 불렀다. 조선 20대 경종(景宗)의 계비 선의왕후(宣懿王后) 어씨의 친정에 큰 우물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혜화동로터리에서 장욱진 화백의 관어당, 부인 이순경氏의 동양서림에 얽힌 내력을 알아보고 있다.

 

혜화동로터리 좌변으로 금문(金門), 블링크안경, 동양서림, 성진약국, 혜화동우체국이 연속하여 보인다. 동양서림은 지난해 102세로 작고한 이순경氏가 1953년 설립한 서울미래유산 인증 서점이다. 이氏는 식민사학의 태두로 알려진 두계 이병도의 맏딸로 1941년 일본 유학 중이던 장욱진과 혼례를 올렸다. 그림과 술밖에 모르는 남편을 만난 ‘업보’로 살림과 아이들 교육을 떠맡아야 했다. 학자 집안인 친정의 체면을 생각하여 고심 끝에 선택한 업종이 서점이었다. ‘동양서림’ 상호는 부친이 지어주었다.
생업을 책임진 아내 덕분에 장욱진 화백은 종로구 명륜동과 남양주 덕소, 충주 수안보, 용인 신갈을 오가며 화작에 몰두할 수 있었다. 독실한 불교신자인 아내에 대한 미안함을 <여인상>과 <진진묘(眞眞妙)> 3점으로 담아냈다. 내년 2월(2024.2.12)까지 장욱진의 회화, 드로잉, 판화 등 250여점이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으로 관람객과 만난다.

조선 최초의 디벨로퍼로 불리는 기농 정세권은 1920년대 익선동·가회동·혜화동 등 사대문 안쪽 좁은 땅에 방과 마루, 부엌, 마당과 화장실이 응집된 ㄱ자, ㄷ자, ㅁ자 형태의 근대 도시형 개량한옥을 선개발해 후분양했다. 1930년대에는 성북동·창신동·서대문 등 사대문 외곽지역, 1940년대에는 왕십리와 행당동까지 영역을 넓히면서 일제의 도시개발계획에 맞섰다.
혜화동에는 실내 공간을 넓히려 방의 벽이 담장 역할을 하면서 짧아진 처마에 함석을 덧대 햇빛을 확보하고 빗물을 방지한 정세권식 근대한옥의 흔적이 군데군데 남아 있다. 혜화동주민센터로 변모한 한소제의 한옥이나 향정한무숙기념관은 이러한 근대한옥의 호사로운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영산대학교를 설립한 부봉환·박용숙 부부의 옛집으로 추정되는 기와집과, ‘만우기념관’ 현판을 달고 있는 효성그룹 조홍제 창업주의 옛집은 거대한 면적을 자랑하고 있다.

성균관의 동북쪽 땅은 연꽃과 앵두꽃으로 유명한 한양도성 내 명승이었다. 상왕으로 물러난 이성계가 살던 집을 희사해서 지은 교종(敎宗)의 교종소(敎宗所) 흥덕사(興德寺)에서 흥덕동이란 동명이 생겼다. 연산군의 폐불정책으로 사라진 흥덕사 터에 회덕사람 송시열이 살면서 송동(宋洞)으로 회자됐다. 송시열은 바위에 曾朱壁立(증주벽립), 今古一般(금고일반) 글자를 새겼다. ‘증자와 주자의 (사상을 계승하여) 벽을 세우겠다’ ‘지금이나 예전이나 (신념은) 한결같다’는 송자의 대의명분론을 압축한 표현이다.
1883년, 고종은 흥덕사터 송동에 북관왕묘를 지었다. 이는 임오군란(1882)으로 충주까지 피신한 왕후에게 환궁 시기를 예언해 준 이씨무녀(진령군)의 주청에 따른 것이다. 1884년 12월7일(음10월20일) 갑신정변 마지막날, 좌의정 홍영식은 고종 부처를 수행해 진령군이 거처하는 북묘까지 갔다가 청군에 피살됐다. 북묘터에 진령군 대감의 권위를 나타내는 하마비가 서 있다. 고종은 북묘의 내력을 북묘비(北廟碑)를 제작해 기록하고, 관왕을 관제로 높여 올렸다.
동묘에 합사된 북묘 자리에 1915년 불교계 중앙학림이 개교하여 3·1운동에 참여하고 광복 후에는 동국대학교로 학맥을 이었다. 1927년에 수송동에서 중앙학림의 동쪽으로 옮겨온 보성학교는 간송 전형필 가문이 운영을 맡았는데, 1989년 송파구 방이동으로 이전했다. 혜화동의 옛 보성중학교 자리에 올림픽기념국민생활관, 보성고등학교 자리에 서울과학고등학교가 들어서 있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우암 송시열의 증주벽립(曾朱壁立) 각자를 살펴보고 있다.

 

경술국치 이전인 1910년 1월25일에 개교한 숭정의숙은 경제력을 갖추고 신분상승을 꾀한 반민(泮民) 교육열의 산물이다. 조선의 최고학부 성균관의 다른 이름은 반궁(泮宮)이다. 천자국인 고대 주(周)나라의 국학 벽옹(辟雍)은 사방이 물에 둘러싸인 반면에 제후국의 학교 옆은 반쪽만 물이 흐르도록 하여 반수(泮水)라 불렀다. 소를 도축하여 성균관에 독점으로 납품하는 반인(泮人)층이 반촌(泮村)을 형성하며 부를 축적하였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사적 제143호)은 문선왕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자 교육기관이다.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를 하고 있다. 천연기념물 제59호로 지정된 수령 약 500년의 서울문묘 은행나무들은 1519년(중종14)에 대사성을 지낸 윤탁(尹倬)이 심었다고 전한다. 대개 은행나무는 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지만,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라고 한다. 성균관대학교의 교목도 은행나무고, 심볼마크도 은행잎을 형상화한 것이다. 남자 하인들이 거처하던 대학당(戴學堂) 앞 주목이 이채롭다.
성대 불문과 김귀정 학생이 1991년 5월 당시 노태우정권의 신공안정책에 반대하는 범국민대회(3차)에 나섰다가 충무로역 진양상가 부근에서 26세로 압사했다. 6월12일,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진 곳을 지날 수 없다는 유림의 반대에 부딪혀 장례행렬은 정문을 피해 도서관 옆문으로 교내로 들어가 유해를 빈소에 안치할 수 있었다.

성균관5길을 따라 걸으며 명륜동 우물터와 이가원(李家源) 가옥을 둘러보고, 동궐 후원의 옥류천에서 흘러나온 물줄기의 명륜동 빨래터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봄을 모은다’는 뜻의 집춘문(集春門)은 임금이 창경궁을 나와 문묘나 성균관으로 거둥할 때 이용하던 전용문이었다. 집춘문 밖에는 개인주택들이 들어서 있어 출입이 불가능하다. 심산 김창숙 선생의 집터에서 나라 잃은 선비의 비장한 결의를 생각하며 머리를 숙였다.

(협)마을대학종로는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를 진행하면서 ‘소설’이라는 매개를 통해 창작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김동인·박태원·박완서·한무숙)이 종로를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에 관심을 가져보았다. 시인이나 소설가의 눈이 특별해 보이는 것은 같은 시공간에 있었지만, 보통의 사람들과는 분명하게 다른 것을 보고 느끼며 결국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였고, 이러한 시각이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혀주기 때문이다.
소설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종로 공간과 우리의 현실 종로 공간을 교차 비교해보고 등장인물들이 왜 그러한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고찰하면서 참여자 각자의 삶에 시사점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었기를 바란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성균관 명륜당 은행나무 앞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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