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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개의 행복을 찾기 위한 고독한 산책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② 박태원 고현학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변자형 기자 | 승인 2023.07.31 00:37

“마치 사우론(Sauron)의 거대한 눈이 떠있는 탑처럼 보인다.” 한 참가자의 말이다. 듣고 보니 정면에서 바라보는 종로타워는 J.R.R. 톨킨이 「반지의 제왕」에서 묘사한 것처럼 고층부의 스카이라운지를 세 개의 탑이 떠받들고 있는 형상이다.
1999년 종로타워가 들어선 자리는 일제강점기 화신백화점이 영업하던 곳이다. 1931년 화신상회의 경영권을 장악한 유통왕 박흥식은 20평짜리 ‘문화주택’을 경품으로 거는 등 파격적인 마케팅을 선보였다. 1932년 바로 옆에 들어선 동아백화점을 인수합병하여 동관으로 부르고 기존 화신 건물은 서관으로 삼아 육교로 연결했다. 초창기부터 두 개의 탑이었던 셈이다.

구보는 화신백화점 승강기 앞에서 너댓 살 아이를 데리고 백화점식당으로 올라가는 젊은 내외를 바라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행복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발 가는 대로 전찻길 안전지대 위에서 머엉하니 서있다가 동대문행 전차에 뛰어오른다. 그러나 89년 전 구보의 행적을 쫓는 16인의 추적자는 동선을 변경해 SC제일은행 본점으로 향했다. 악명 높은 경성종로경찰서가 있던 곳이다. 서편의 주상복합건물 그랑서울이 건축된 자리에 제비다방이 있었다. 박태원은 제비가 조선광무소 건물 1층에 있다는 기록을 남겼다.

1929년 경성고등공업학교 건축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이상은 총독부 건축과 기사로 들어갔다. 각혈을 다스리기 위해 황해도 배천온천으로 요양하러 갔다가 운명의 여인 금홍을 만났다. 이듬해인 1933년 이상은 백부의 유산으로 제비다방을 개업하고 금홍을 불러올려 마담으로 앉히고 동거를 시작했다. 이상은 거리쪽 벽면을 전면 유리로 꾸미고 실내 공간은 흰색으로 칠했다. ‘도스토옙스키의 방’이라 부르던 골방에 구인회 멤버들이 모여 예술과 문학을 논했다. 1934년 이상은 조선중앙일보에 난해시 「오감도·烏瞰圖」를 연재하면서 비슷한 시기 같은 신문에 연재된 박태원 중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에 ‘하융’이란 이름으로 삽화를 그렸다.

녹두장군이 갇혔던 전옥서 터를 돌아 광교를 건너 인제서야 소설의 출발지에 다다른다. 한국관광공사 서울센터 앞쪽 다옥정 7번지는 부친(박용환)의 공애당약방과 숙부(박용남)의 공애의원이 좌우에 자리한 2층 구조의 한옥상가로 작가 박태원의 실제 집이자 소설 속 산책자 구보의 집이다. 1934년 무렵에는 박태원을 비롯해 어머니와 가업을 이은 형(박진원)·형수, 동생(박문원), 안잠자기, 약방아이 등 적어도 10명가량이 기거했다. 복개와 도로확장 이전에는 남쪽천변의 약방 사환 창수와 북쪽천변의 이발소 아이 재봉이가 청계천을 사이에 두고 얘기를 나눌 정도로 천폭이 좁았다.
어려서부터 시력과 청력이 좋지 않은 ‘몹쓸 체력’의 박태원은 어깨 너머로 습득한 의학지식을 발휘해 급우·선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래서 당시 경성의전 해부학교실 구보(久保) 교수의 이름을 따와 박태원을 호명하는 구보(仇甫)로 삼았다.

 

7월23일(일) 오전, 세찬 비가 내리는 날씨에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청계천 광교 남쪽 옛 다옥정 7번지 앞에서 구보씨의 흔적을 쫓고 있다.

 

1934년 8월1일 수요일 오정, “일즉어니 들어오너라”는 어머니의 당부를 뒤로 하고 다옥정 집을 나서는 스물여섯의 미혼 룸펜(Lumpen)1) 구보의 차림새를 상상해 본다. 앞머리를 일자로 자른 갓빠머리에 동그란 안경을 썼다. 노타이셔츠와 신사바지에 구두를 신고 단장과 대학노트를 들었다. 시계를 차거나 모자를 쓰거나 우산을 챙기지는 않았다. 그러고는 격렬한 두통을 느끼며 ‘아무렇게나 내어놓았던 바른발이 공교롭게도 왼편으로 쏠렸기 때문에’ 아무런 사무도 갖지 않은 종로네거리로 향하게 된다.

우리는 구보가 동대문에서 한강행 전차를 갈아타고 지나갔을 남대문 1정목·2정목을 걷는다. 노구치 시타가후가 건축한 반도호텔(1938·롯데호텔), 고리대출로 배를 불린 민간총독부 조선식산은행(1918·롯데백화점 본점), 조지야백화점(롯데영플라자) 등을 거쳐 조선은행(1912·화폐박물관) 앞까지 빗길을 주유했다.
한국은행 앞 교차로는 당시 조선은행, 경성우편국(1915·서울중앙우체국), 미쓰코시 경성지점(1930·신세계백화점)이 트라이앵글을 이루며 ‘센긴마에 히로바(鮮銀前 廣場)’로 불렸다. 여기서부터 황금정에 이르는 좌우 지역은 ‘경성의 월스트리트’로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번화한 거리이자 제국주의 경제침략의 상징이었다. 그렇기에 광복 후 이충무공의 동상은 광화문이 아니라 이곳에 세웠어야 했다.

이토 히로부미의 머릿돌 글씨 ‘定礎(정초)’를 확인하고 11시 방향으로 경성치의전 터, 경성부립도서관 터를 지나며 장곡천길(소공로)을 따라 오른다. 구보가 조선일보 사회부에서 근무하는 친구 김기림에게 전화하려고 들어간 양복점(본전양복점)이 있었음 직한 곳 인근에 제이제이안토니(JJ.ANTONY) 소공점이 보인다.
세종대로18길 건너 북쪽에는 구보가 꼽추화가 구본웅을 만나려고 들른 골동점(우고당) 터다. 구본웅의 나이 어린 이모 변동림은 구본웅의 친구 이상과 짧은 결혼생활을 했다.

이곳에서 더플라자호텔 뒤편길을 돌아나오면 스타벅스(소공동점) 맞은편에 낙랑파라 자리가 있다. 1931년 도쿄 유학파 이순석 화가가 고대국가 ‘낙랑’에 응접실을 뜻하는 ‘파라’(parlour의 일본식 표기)를 합성해 카페 이름을 지었다. 소설에서 구보는 세 번에 걸쳐 낙랑파라에 출입한다. ‘일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 틈에 끼어 가배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며 「율리시즈」를 논하는 김기림의 탁설을 듣는다.

우리는 지하도를 이용하여 건너편 환구단 터에 올랐다. 일제가 일한병합 후 환구단을 허물고 철도국 직영의 경성철도호텔(1914)을 짓는 바람에 지금은 환구단 정문과 3개의 석고, 황궁우와 황궁우 정문·협문만 남아 있다. 호텔은 이승만 때 조선호텔로 이름이 바뀌고, 2021년에는 영문 철자도 CHOSUN에서 JOSUN으로 변경되었다.
환구단 터를 내려와 89년 전 구보가 그랬던 것처럼 경성부청(서울도서관) 앞에 서서 태평통 건너 대한문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500년 왕조의 찬란한 위엄은 쉽사리 찾아보기 어렵다.

 

2023년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2차시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참가자들이 환구단 황궁우 앞에서 고현촬영을 하고 있다.

 

경성토박이 유학파 엘리트 구보는 1934년 8월1일 낮 12시부터 8월2일 새벽 2시까지 14시간 동안 도보 9.6㎞, 전차 5.7㎞를 이동하며 행복과 기쁨을 찾아 경성의 이곳저곳을 배회했다. 소설 말미에서 구보는 생활을 가지고 소설을 쓰고 결혼도 할 것을 다짐한다. 실제로 박태원은 연재를 마친 직후 보통학교 훈도 김정애와 다옥정 7번지 본가에서 혼례(1934.10.27)를 치르고, 이후 수준급 모더니즘 작품도 창작했다. 우리는 따라가는 이의 시선으로 동선을 변형하여 2시간여 동안 3㎞를 거닐며 우중 모데르놀로지2)를 수행했다.

1930년대 경성을 이해하기 위해 1936년작 「천변풍경」(박태원), 「날개」(이상)를 읽어보고 그 소설 속 배경을 따라 걸어도 좋을 것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3차시는 9월10일, 창신동에서 박수근과 백남준을 고현(考現)한다.

 

1)룸펜(Lumpen) : 우리나라에서는 일제강점기 때 많이 배웠음에도 그 지식을 쓸 데가 없는 슬픈 지식인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는 의미로 쓰던 말이다.
2)모데르놀로지(modernology, 고현학·考現學) : 현대의 풍속과 세태를 조사·기록하는 학문을 가리킨다. 이 방법론을 문학 쪽에 적용한 것이 세태소설이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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