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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의 권토중래기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① 김동인 장편 「운현궁의 봄」
변자형 기자 | 승인 2023.07.02 23:29

일요일 오전 3호선 안국역은 한산하다. 3번 출구로 나가 현대사옥 내 관천대를 뒤로 하고 창덕궁 매표소에 이른다. (협)마을대학종로가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에 응모해 선정된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를 개시한다. 첫 탐방 대상은 김동인의 장편 「운현궁의 봄」에 등장하는 장소들이다.

2020년 복원된 돈화문 월대 위에 서서 좌우를 둘러본다. 1910년 대한제국을 병탄한 일본제국은 창덕궁과 경복궁을 잇는 길을 대로로 확장했다. 순종 사후에는 영친왕을 압박해 1932년 종묘관통선을 개통하여 종묘를 창덕궁·창경궁에서 떼어냈다. 1966년 이 신작로에는 ‘율곡로’라는 이름이 붙었다. 율곡로 종묘 구간은 2009년 지하화 공사에 들어가 2022년 끊어진 지 90년 만에 다시 이어졌다.
이번에는 남쪽 도심을 바라본다. 종로까지 뻗어 주작대로 역할을 하던 돈화문 앞 王의 길은 일제가 월대를 덮고 남산 왜성대에 위치한 조선총독부까지 직선 도로화하여 지금의 형태를 갖췄다.

당하관이 드나들던 창덕궁 금호문(金虎門) 앞은 1926년 4월 순종 승하 때 송학선 의사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을 척살하려 뛰어든 곳이다. 「운현궁의 봄」 4장에서 흥선군이 대제학 김병학의 사인남여를 빌어 타고 승후관 조성하를 배행하여 내전으로 조 대비를 안견하러 출입한 문이 금호문이다.

금천교를 건너 마주하는 진선문(進善門) 우측에는 대한제국의 궁내부를 형식적으로 계승한 이왕직(李王職) 청사가 있었다. 인정문 용마루에 3개, 인정전 용마루에 5개가 새겨진 오얏꽃 문양을 통해 조선왕조를 일개 가문의 정권으로 낮추려는 일제의 사특한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소설 25장에는 갑자년(1864) 고종의 즉위식과 함께 국태공의 섭정 취임식 장면이 나온다. 살아있는 대원군 직위에 오른 흥선은 인정전 월대에 올라 발아래 늘어선 대소백관을 향해 “전 책임을 내가 지고 전 의무를 내가 갖겠다”고 선언하며 사직의 만세태평을 예견했다. 그러나 채 반세기가 되지 못한 1910년 9월에 손자인 순종 융희제는 인정전에서 메이지 덴노가 보낸 창덕궁이왕(昌德宮李王) 책봉 칙사를 맞닥뜨리게 된다.
 
선을 즐기고(낙선재·樂善齋) 복을 아끼고(석복헌·錫福軒) 건강하게 장수한다(수강재·壽康齋)는 헌종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희정당(효명세자), 중희당(헌종), 대조전(철종), 흥복헌(순종)… 소설에 등장하는 군왕들이 승하한 전각과 터를 둘러본다. 임종에 처한 지존이 평상시 입던 웃옷을 든 내시가 지붕에 올라 상위복(上位復)을 3번 외쳤을 것이다. “윗사람(임금)이여, 돌아오소서”라는 뜻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운현궁 노안당을 탐방하고 있다.

 

원점 회귀. 돈화문을 나와 운현궁으로 향한다. 흥선대원군이 궁궐을 출입할 때 이용한 공근문(恭勤門)의 위치를 가늠해 본다. 운현궁은 흥선군의 낙척과 섭정, 실각과 납치, 유폐와 운명을 모두 지켜본 역사적인 곳이다. 경내에 들어서면 한창때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소설 1장에서 묘사된 것처럼 ‘쓰러져가는 아래채, 거미줄 천지의 추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고종 즉위 이후 잠저(潛邸)인 ‘경운동 흥선댁’은 새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대원위 대감이 거처한 사랑채 노안당(老安堂)은 처마 끝에 각목을 길게 대어 차양을 달고 주춧돌 사이를 벽돌로 막아 놓은 독특한 누마루의 모습을 보여준다. 현판은 김정희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다. 현판 왼쪽에 ‘서위 석파선생 노완’(書爲 石坡先生 老阮: 늙은 완당이 석파 선생에게 써준다)이라는 작은 글씨가 있다.

운현궁에서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노락당(老樂堂)은 민치록의 외동딸 민자영이 삼간택 후 왕비수업을 받은 곳이다. 고종과 명성황후가 가례를 올리고 침소로 사용한 이후 가족행사를 위한 공간으로 용도가 바뀌었다. 소설 6장에서 명성황후는 삼청동에서 오막살이하는 ‘얽으망태 소녀’로 등장한다. 친정이 단출한 것이 마음에 들었던 흥선대원군이 며느리로 낙점했지만, 훗날 정적으로 대립하게 된다.
1866년(고종3) 병인년 3월에 15살 이명복은 노락당에서 16살 민자영과 친영례(親迎禮)를 거행했다. 병인년 정월에 병인박해가 시작됐고, 그 반동으로 11월에 병인양요가 발생했다. 같은 해 7월에는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던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General Sherman)號가 소각됐다. 노락당 동편으로 양관(洋館) 함석지붕이 보인다.

이로당(二老堂)은 안채 용도로 신축한 건물이다. 바깥 남자들의 출입을 제한하기 위해 중정(中庭)이 있는 ㅁ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현판의 두 이(二)자가 위쪽으로 올라가 있는데 대원군과 부대부인을 높이는 의미라 한다. 석조 수조인 운하연지(雲下硯池), 해시계를 올려놓았던 일영대(日影臺)를 볼 수 있다. 동편 마당에는 빙고 앞쪽에 난을 올려놓았던 무승대(茂承臺), 고종이 어릴 때 오르내리며 놀던 정2품 대부송(大夫松)을 기리는 경송비(慶松碑)가 서 있다.

「운현궁의 봄」은 경신년(1860)부터 신유년(1861), 임술년(1862), 계해년(1863), 갑자년(1864)에 이르기까지 5년에 걸친 상갓집 개 흥선군 이하응의 권토중래를 다뤘다. “옛날 흥선이 관직을 내어던진 이래, 오랫동안 쓸쓸하기 짝이 없던 그 집에도 드디어 봄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봄은 (오랫동안 쓸쓸하였더니만큼) 또한 유달리 화려한 봄이었다(25장).”

소설의 이해를 더하기 위해 부암동 석파정(石坡亭) 별서, 남양주 문안산 기슭의 국태공원소(國太公園所)를 찾아봐도 좋을 것이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2차시는 7월23일, 1930년대 경성부 구보氏의 하루 여정을 따라간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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