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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기다린 나목(裸木), 박수근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③ 박완서 성장소설 「나목」
변자형 기자 | 승인 2023.09.23 00:13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3차시 탐방지는 창신동과 숭인동이다. 주제소설은 박완서의 데뷔작 「나목」(1970)이다.
10일(日) 오전 10시30분. 첫 포스트는 6호선 동묘앞역 6번출구에서 직진 70m 지점이다. 이곳은 소설에서 화가로 등장하는 옥희도의 실제 모델인 박수근의 창신동 집터이다. 박수근은 6·25전쟁 동안 미8군 PX에서 초상화를 그려주고 모은 돈으로 창신동에 방 둘, 마루 하나가 딸린 18평 한옥을 장만했다. 그리곤 1952년부터 1963년까지 11년간 거주하면서 자신의 대표작들을 구상했다. 집터 벽면 계량기 옆 홈통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박수근 화백 사시던 집’이라는 세로글씨가 보인다.

 

9월10일 오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6호선 동묘앞역 6번출구 앞에서 일정을 체크하고 있다.

 

경로를 거슬러 다시 6번출구 앞 시즌빌딩으로 이동한다. 복합플라자 시즌빌딩 자리는 1964년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아이스링크인 ‘동대문 실내스케이트장’이 개장한 곳이다. 수지를 맞추기 위해 여름철에는 로라장(롤러스케이트장)이나 식용얼음을 제조하는 공장으로 변신하며 운영하다가 199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
시즌빌딩 오른편은 1967년 완공되어 현존하는 서울시 아파트 중 두 번째로 오래된 동대문아파트다. 방 2개에 욕실 1개가 딸린 9평짜리 좁은 아파트지만 한때 이주일, 백일섭 등 연예인들이 거주해 ‘연예인 아파트’로 불리기도 했다. 지하 1층, 지상 6층에 중정(中庭)이 있는 ㅁ자형 건물배치가 특이하다.

동묘앞역 7번출구에서 8번출구 방면으로 길을 건너 백남준기념관으로 향한다.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 살았던 3천평 규모의 대규모 저택은 오래전에 헐렸지만, 쪼개진 필지 중 하나에 주민공동체와 서울시립미술관이 각각 카페와 기념관을 운영하며 공존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직물업으로 막대한 부를 쌓은 부친 백낙승에 대해 백남준은 ‘친일파’와 ‘외화획득’이라는 양가감정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1998년 독일 괴테 인스티투트(Goethe Institut)가 비독일인 예술인사의 공로를 인정하는 괴테메달을 수상했다. 명성과는 별개로 유창한 일어에 비해 어눌한 우리말, 18세에 유학을 나가면서 6·25전쟁을 회피했다는 비판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창신동 두산아파트를 지나면 지봉로5길 낙산냉면 앞이다. 1946년부터 1955년까지 가수 배호가 살던 집터다. 배호는 1942년 중국 산둥성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한국광복군 출신이다. 1967년 배상태가 작곡한 「돌아가는 삼각지」로 스타덤에 올랐으나 지병인 신장염이 도져 1971년 29세로 숨을 거뒀다.

 

9월10일 오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창신동 백남준기념관을 둘러보고 있다.

 

1902년 대한제국 황실은 내탕금을 내어 조선 전체의 사찰을 총괄하는 수사찰로 대본산원흥사(大本山元興寺)를 창건했다. 1912년에 불교의 중심이 4대문 안 각황사(현 조계사의 전신)로 옮겨가면서 1916년 원흥사 자리에 창신공립보통학교가 문을 열었다. 1970년 당시 창신국민학교는 무려 122학급 1만166명의 학생수를 기록했다. 가수 배호, 이장희, 김광석과 이종찬 광복회장(23대)이 창신국민학교를 졸업했다.
창신초 교문에서 왼편 골목길을 따라 걸어 창신동장난감도서관을 지나니 바로 안양암(安養庵) 대문이 나타난다. 대웅전의 주불은 아미타불이고 덧집 형태의 관음전에는 높이 3.53m의 마애관음보살을 모셔두었다. 안양암 대문 좌측의 철제문 안쪽 공간에는 5개의 비석이 있다. 이 중 ‘南無阿彌陀佛(나무아미타불)’이라고 음각된 비석의 왼쪽 면에 삼화부인회 고문 裵貞子(배정자)의 이름이 보인다. 이토 히로부미의 수양딸로 알려진 배정자(다야마 사다코, 1870~1952)는 그 악질적인 친일 밀정활동으로 광복 후 반민특위에 체포되기도 했다. 딸 현송자가 좌옹 윤치호의 사촌동생 윤치오(중추원 부찬의)의 셋째 부인이다.

안양암에서 얕은 비탈의 창신5길을 오르면 대구에서 상경한 가객 김광석이 15년간 거주(1975~1990)하며 음악에 대한 열정을 불사른 작은 집이 나온다. 좌측 계단과 붙어 있는 이 집은 집터를 알리는 세모꼴 동판이 철거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국가유공자의 집 김수영’이란 부친의 문패로 겨우 확인할 수 있다.
창신5길을 200여m 내려오다가 창신길과 만나는 시장 사거리에서 가마치통닭(창신점)까지 창신골목시장을 이동한다. 이곳 창신길 651번지 일대는 효명세자빈 신정왕후 조대비의 친정 별장이 있어서 ‘조만영 별서지’로 기억되는 곳이다. 조대비는 철종 사후 흥선군의 차남 이명복을 남편 익종(문조)의 양자로 삼아 익성군으로 봉해 왕위에 올리고 수렴청정하다가 흥선대원군에게 국정을 넘긴 인물이다. 지난 6월25일 진행한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1차시의 주제소설 「운현궁의 봄」의 주요인물인데 또 이렇게 연결된다.

창신2길 방면 U자로 길을 돌면 ‘한울삶’(한 울타리의 삶) 현판을 단 한옥에 다다른다. 1986년 8월12일에 발족한 민주화운동유가족협의회(현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유족들이 사무공간 겸 생활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는 공간이다.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산화해 간 130여 열사의 영정이 함께하고 있다. ‘전정권’에서는 문무일 검찰총장이 한울삶을 방문해 “지난 검찰의 잘못된 부분에 미안하다”며 사과하는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자식을 먼저 보낸 유가협 어머님, 아버님들은 지금도 양심수 석방과 민주유공자법 제정촉구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한울삶 북쪽 50m 전방에는 노동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바꿔내고자 자기 몸을 불사른 아름다운 청년의 정신을 기리는 전태일재단이 자리하고 있다.

 

9월10일 오전, (협)마을대학종로가 진행하는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참가자들이 유가협의 터전 ‘한울삶’ 앞에서 민주화운동에 헌신한 사람들의 헌신을 고현하고 있다.

 

소규모 봉제공장이 밀집해있는 창신동 647번지 일대는 노찾사 2집의 「사계」 노랫말처럼 드르륵드르륵 “미싱은 잘도 돌아”가고 샘플과 완제품을 운반하는 오토바이가 종횡한다. 창신·숭인 도시재생사업으로 2018년 문을 연 이음피움 봉제역사관은 5년 만인 2023년 2월말 운영이 종료됐다. 국내 최초 봉제역사관이 문을 닫은 이유는 그동안 서울시 예산으로 위탁업체가 운영해왔는데 초기 예상과 달리 이용객 수가 적어 서울시의 민간위탁 종합성과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아 계약이 연장되지 못해 폐관의 수순에 들어간 것이라고 한다.
봉제골목 위쪽 창신동 641번지 공영주차장 인근에는 일제와 영합해 고리대로 막대한 부를 축적한 임종상의 호화저택이 있었다. 전쟁과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서울 달동네로 밀려든 가난한 사람들이 정착해 판자촌을 형성했던 모습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탐방단은 낙산성곽길 아래 창신동 골목길을 800여m 걸어 ‘비를 가리는 집’ 비우당(庇雨堂)에 이르렀다. 실학의 선구자 이수광은 낙산 동쪽 상산의 한 줄기인 지봉(芝峯) 아래에 외가쪽 5대조 할아버지인 하정 류관의 낡은 집을 고쳐 살며 백과사전 「지봉유설」을 저술했다. 단출한 비우당 삼간집 뒤로는 단종비 정순왕후가 명주를 담갔더니 자주색 물이 들었다고 전하는 ‘자주동샘’이 있다.
원각사와 명신초등학교를 경유해 낙산길을 돌아 동망산길 골목으로 내려오면 청룡사(靑龍寺) 지붕이 보이기 시작한다. 단청 없는 우화루(雨花樓)는 열일곱 군부인 송씨가 영월(寧越)로 유배 가는 열여섯 노산군과 마지막 밤을 보냈다는 전각이다. 하염없이 ‘비꽃(雨花)이 내리는 누각’이란 이름이 ‘편안히(寧) 넘어가(越)’지 못하고 꺾여버린 두 사람의 삶을 예고하는 것 같아 애련하다. 청룡사 옆 정업원(淨業院)은 왕가나 사대부가 여인들이 출가하여 머물던 사찰로 전해진다. 단종비 송씨가 깨끗하게 불도를 닦으며(淨業) 동망(東望)했던 서러움의 구기(舊基, 옛 자취가 남아 있는 빈터) 승방이다.

숭인동 좁은 계단의 경사진 골목길을 내려와 6호선 라인의 이면도로인 지봉로12가길을 걷는다. 채석장 절개지 아래로 대한불교 법화종 법왕사(法旺寺)의 불사 등 공사가 한창이다. 영조 47년(1771)에 임금이 친히 동망봉(東望峰)이라는 글자를 써서 바위에 새기게 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인근 지역이 채석장으로 쓰이면서 바위가 깨어져 나가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창신동에 살았던 박수근은 이 채석장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화강암 질감과도 같은 그의 유채화 덧칠 기법을 고안했는지도 모른다.
답사를 시작한 지 어느덧 2시간 30분이 넘어 1시 가까이 되었다. 상춘원(귀족회관) 터와 강경대기념관 터는 다음 기회에 둘러보기로 하고, 동묘앞역 3번출구 황학동 벼룩시장 길로 들어섰다.

 

숭인동 채석장 절개지 위쪽이 동망봉 자리이다. 2015년 12월 수립된 채석장 명소화 사업계획은 2023년 4월 이후 사실상 중단된 상태이다.

 

동관왕묘(보물 제142호)는 서울의 동쪽에 있는 관우의 묘(사당)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임진왜란 이후인 1599년, 명나라 신종 만력제가 현액(縣額)과 비용을 보내와 조선 조정에서 1601년(선조34)에 완성했다. 동묘 정전은 정(丁)자와 일(一)자가 합쳐진 공(工)자의 앞뒤로 긴 직사각형 형태이다. 내부는 앞쪽이 제례를 위한 전실이고, 뒤쪽이 관우와 부장들의 조각상을 둔 본실이다. ‘顯靈昭德義烈武安聖帝廟(현령소덕의열무안성제묘)’라고 쓰인 현판이 2개인데, 오른쪽 것은 1908년(융희2) 북묘가 동묘에 합사되면서 가져온 현판으로 추정된다. 정전은 전면을 제외한 나머지 3면이 벽돌로 둘린 퓨전한 양식을 하고 있다.
숙종이 능행 후 귀궁하면서 동묘에 들른 것이 선례가 된 이래 역대 임금이 배알하는 대상이 되었다. 이렇게 한수정후(漢守亭候) 관우 운장은 400여 년 전 조선땅에 들어와 군신으로 관왕으로 관제로 올려지며 왕실과 민간의 추앙을 받았다. 지금도 중국집에 가면 관우의 그림이나 조각상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동묘 인근 서울다솜관광고등학교 자리는 노비로 강등된 정순왕후를 가엾게 여긴 동네 아낙들이 조정의 눈을 피해 먹을거리를 건네주는 등 금남의 채소시장을 열어 정순왕후를 돌보았던 여인시장(女人市場)이 있던 곳이다. 여기서 종로58길 남단 청계천변은 정순왕후가 단종을 떠나보내면서 마지막으로 이별을 한 ‘영영 건넌 다리’ 영도교(永渡橋)로 이어진다.

 

9월10일 오후,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탐방단이 숭인동 동관왕묘를 둘러본 후 펼침막을 들고 기념 촬영하고 있다.

 

1914년 일제는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동부 숭신방(崇信坊)과 인창방(仁昌坊)에서 머리글자를 조합해 숭인동(崇仁洞)을, 가운데 글자를 합성해 창신동(昌信洞)이라는 엉뚱한 지명을 만들었다. 이름이 사라지면 공간이 사라지고, 공간이 사라지면 기억도 사라진다. 그래서 오늘과 같이 특정 사건을 만들거나 사건에 휩쓸린 공간을 기억하기 위한 걸음이 요구되는 것이다.
주제소설 「나목」에서 주인공 이경은 동화백화점 미군PX에서 중앙우체국을 지나 을지로입구로 해서 종로네거리 화신백화점 있던 종각 쪽을 거쳐 계동집으로 퇴근하는 동선을 보여준다. 이 코스는 소설가 구보가 이동했던 길로 지난 2차시(7월23일)에서 우리가 이미 한 차례 고현(考現)을 거쳤다. 그래서 오늘은 창신동과 숭인동 골목을 걸었다. 말라서 죽어버린 고목(枯木)이 아니라, 다만 잎이 떨어져 가지만 앙상한 나목(裸木)은 새봄의 찬란함을 예고할 수 있다.
2023년 「종로구 주민소통 공모사업」 ‘소설 속 종로 걸어보기’ 마지막 4차시는 10월22일, 혜화동과 명륜동을 탐방한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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