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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우리를 망쳐 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화합과 협력을 통한 시련의 극복 의지 형상화
변자형 기자 | 승인 2023.02.08 21:06

오늘 중3 국어시간에는 하근찬의 전후 단편 「수난이대」를 공부했다. 작가는 일제강점기 남양군도에 징용으로 끌려가 다이너마이트 폭발로 왼팔을 잃은 아버지 박만도와, 6·25 전장에서 수류탄 쪼가리에 맞아 한쪽 다리가 절단된 아들 박진수 부자의 이야기를 담담하고 간결한 문체로 그려나간다.
한쪽 팔과 한쪽 다리를 잃은 두 사람이 건너가야만 하는 외나무다리는 이들이 앞으로 겪어야 할 고난과 시련을 상징한다. 외팔이 아버지 만도가 외다리 삼대독자 진수를 업고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는 장면은 자신들 앞에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극복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진수: (독백) 나꺼정 이렇게 되다니 아부지도 참 복도 더럽게 없지. 차라리 내가 죽어 버렸더라면 나았을 낀데…
-만도: (독백) 이제 새파랗게 젊은 놈이 벌써 이게 무슨 꼴이고. 세상을 잘못 만나서 진수 니 신세도 참 똥이다 똥.
-진수: 아부지! 이래 가지고 나 우째 살까 싶습니더. 차라리 아부지같이 팔이 하나 없는 편이 낫겠어예. 다리가 없어노니 첫째 걸어 댕기기가 불편해서 똑 죽겠심더.
-만도: 야야, 우째 살긴 뭘 우째 살아. 목숨만 붙어 있으면 다 사는 기다. 그런 소리 하지 마라. 나 봐라, 팔뚝이 하나 없어도 잘만 안 사나. 남 봄에 좀 덜 좋아서 그렇지, 살기사 와 못 살아. 걸어 댕기기만 하면 뭐 하노. 손을 제대로 놀려야 일이 뜻대로 되지. 그러니까 집에 앉아서 할 일은 니가 하고, 나댕기메 할 일은 내가 하고, 그라면 안 되겠나.

아버지와 아들의 2대에 걸친 전쟁을 수난으로 연결시키며 개인적 차원의 고난 극복이 민족적 차원으로 확대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자연물(용머리재)의 시선이 탁월하게 묘사돼 있다. 우리에게 당면한 ‘외나무다리 건너기’는 남남갈등을 해소하고 남북적대를 극복하는 것이다. 문득 재미교포 작가 이민진의 장편 「파친코(Pachinko)」의 첫 문장이 떠오른다. “History has failed us, but no matter” 역사는 우리를 망쳐 놨지만(저버렸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만도는 아랫배에 힘을 주며 끙 하고 일어났다. 아랫도리가 약간 후들거렸으나 걸어갈 만은 했다. 만도는 아직 술기가 약간 있었으나, 용케 몸을 가누며 아들을 업고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너가는 것이었다. 눈앞에 우뚝 솟은 용머리재가 이 광경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난이대」 결말에서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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