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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파친코」를 통해 나타난 한국인의 디아스포라“역사가 우리를 망쳤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최서현 기자 | 승인 2021.03.18 13:32

디아스포라(Diaspora)는 그리스어로 흩뿌리거나 퍼트린다(διασπορ‽)는 뜻으로 역사적으로는 팔레스타인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오랜 세월 동안 떠돌아다녔던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인은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건너간 것이 공식적인 타국 이주의 시발이다. 물론 임진왜란 중에도 도공을 비롯해 조선인들을 끌고간 일본인들은 자국을 포함 그들이 교역하고 있는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동남아시아 등에다 조선인들을 팔아넘겨 노예무역으로 특수를 누렸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볼 때는 17세기가 시작일 수도 있겠다. 그후 일제강점기에 많은 조선인이 기근과 가난 또는 일제의 탄압을 피해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만주, 중앙아시아, 러시아 등으로 이주했고 부산과 제주도에서는 현해탄을 넘어 일본으로 삶을 옮겼다.
최근 집계로는 전 세계 교포인구가 700만명을 넘었으며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들까지 합하면 더 많으리라 생각된다. 더욱이 우리는 이산가족도 있다.

요즘에는 자발적 이민으로 더 나은 삶을 위해 타국생활을 하는 것이라 크게 보면 이것도 디아스포라의 한 부분이다. 시대가 변했고 이제는 앉아서 디지털의 혜택을 받는 만큼 지구촌이 하나로 인식되는 것도 사실이어서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파친코(Pachinko)란 소설이 바로 우리들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먼나라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홍보 덕분인지 같은 부류의 영화 미나리(Minari)는 50~60대는 물론 젊은이들로 영화관을 가득 메우고 흥행 중이다. 「미나리」가 1978년 미국에서 태어난 이민 2세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로 1980년대 미국이민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었다면, 이 「파친코」는 1929년 일제강점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로 일본으로의 한국인 디아스포라적 여정을 다루는 배경이 「미나리」와 다르다.
 
작가인 재미교포 2세인 이민진(Lee Min Jin) 씨는 일본에 이주한 한인의 4대에 걸친 이야기를 영문으로 써서 몇 년 전 미국에서 출간했고, 다시 그 책은 한국어로 번역되어서 이미 우리들의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이민진은 어려서 미국으로 부모님과 이민을 간 후 하버드대에서 역사학을 전공한 후 로스쿨을 졸업, 변호사로 개업하여 일을 했지만 지금은 저술에 몰입하고 있다. 특히 이 소설은 30년 만에 완성되었다니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나 알 수 있다.
 
「파친코」라는 제목에서 떠오르는 이미지는 일본 야쿠자, 도박, 범죄 등의 단어이다. 이런 선입견을 가지고 책 머리를 펼치다 보면 ‘파친코’란 단어는 찾아볼 수 없다. 한참 후에야 왜 타이틀이 「파친코」였는지 알 수 있다. 1929년 일제강점기하 부산의 한 허름한 하숙집에서 여주인 양진과 딸인 선자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펼쳐진다. 

이민진 소설  「파친코」

가난하고 불구의 몸이지만 정신만큼은 꿋꿋하고 선함이 몸에 배어있는 아버지와 엄마 양진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란 외동딸 선자는 고한수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임신하면서부터 이야기는 긴장감으로 빠져들게 된다. 결혼할 줄 알았던 선자는 고한수가 이미 일본인 부인을 둔 유부남이어서 결혼은 못 한다는 말을 듣고 충격에 빠진다.
 
남편과 일찍 사별한 양진은 딸 선자와 함께 하숙으로 생계를 유지하게 된다. 어느날 백이삭이라는 목사가 들어왔는데 그는 오사카 형네 집으로 가려는 도중 결핵이 도져서 지인이 알려준 하숙집을 찾아왔던 것이다. 선자 어머니와 선자의 도움으로 사경을 헤매다 살아나면서 백 목사는 임신한 선자를 데리고 오사카로 가서 결혼식을 올린다. 선자에게는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일본 오사카 부락마을 근처에서 일본인들에게 온갖 수모와 냉대를 받으며 고한수의 아들 노아와 남편 백이삭의 아들 모세를 낳고 생계를 유지하지만, 백이삭은 지병에 옥살이 후유증으로 뜻을 펼쳐보지 못한 채 사망한다. 물론 선자네 가족은 남편의 형 요셉과 그 부인과는 늘 함께한다.
 
고한수란 인물은 파친코 야쿠자 세계에서 제2인자라 선자 주위를 주시하며 힘들 때마다 선자네 가족을 암암리에 도와준다. 영민하게 자란 아들 노아에게 와세다대학교 학자금과 하숙비를 대주지만, 그 돈의 출처를 알자 고한수의 아들인 노아는 공부를 포기하고 나쁜 피를 받았다며 결국은 자살하고 만다.
 
반면 목사 아들 모자수(모세)는 공부에는 관심 없고 노아와 전혀 다르게 성장한다. 아버지의 차분함과 곧은 행동을 물려받은 그는 성인이 되자 파친코사업을 하면서 성공하게 된다. 그는 아무리 조선인이 뛰어나도 한계가 있음을 일찍이 몸으로 깨달았다. 도박 게임이지만 정직하게 재산을 모으게 된다.
그의 아들 솔로몬은 일본을 벗어나 미국에 가서 공부했지만 결국은 할머니와 아버지의 삶의 터전인 일본으로 돌아와서 아버지 사업인 파친코를 물려받는다. 이렇게 파친코 가족이 족보처럼 대를 잇는다.
 
소설 끝에서는 선자는 목사남편 무덤에 찾아가서 열쇠고리에 달린 노아 사진과 함께 무덤에 흙을 파내고 묻어준다. 노아는 생물학적 아버지인 고한수란 사람을 아버지로 인정하지 않고 키워준 아버지를 사랑했다. 선자 역시 남편에 대한 사랑이 컸지만 두 남자가 운명적으로 여인에게 들어왔음을 시인하고 고한수를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의 책임도 인정한다. 이렇게 끝을 맺는데, 방대한 소설의 내용은 가족들의 애환으로 꽉 채워져 있다. 
 
소설 속 인물에서도 3,4세대 손주들은 일본에서 출생했기에 그들에게는 한국이 더이상 고국이 아니다. 그렇다고 일본인도 아니다. 그러니 그들은 이방인이고 경계인이다. 1세대 중에서 어떤 이는 북한으로 갔고 그들에게 1980년 이후부터는 북한은 가난의 상징이라 不好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남한은 어떤가. 한국말도 잊어버린 그들을 차가운 시선으로 일본인이라며 외면한다. 그들에게서의 정체성을 논하는 것은 가혹하다. 그들은 오로지 생존을 위해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죄밖에 없다. 한때는 조총련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던 과거와 현재 대한민국의 위상 속에 미묘한 심리적 갈등도 있을 것이다.
한국인이 일본인들의 시선을 피해 자립할 수 있는 직업이 파친코라는 사실에 여지껏 가졌던 편견이 무너진다. 누가 감히 그 직업에 손가락질 할 수 있을런지…

파친코는 단순 가족史가 아닌 한국민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인 만큼 일본에서의 고단한 삶의 여정과 적잖은 일본인의 야만적 태도를 볼 수 있는 감동적인 대서사이다. 작가는 국가가 그들을 보호해주지 못했지만, 그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을 그렸다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는 감동적인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이다. 미나리에 출연했던 윤여정이 파친코 시리즈에도 촬영하고 있다 해서 더욱 기대가 크다.

최서현 기자  lavita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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