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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트 Montmartre
최서현 기자 | 승인 2020.11.29 11:15

몽마르뜨는 이름만 들어도 프랑스 파리의 예술적 즐거움과 설렘이 가득한 곳으로 인식되지만, 이곳은 대혁명기에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 또한 컸던 곳으로 마냥 낭만적인 장소는 아니다. 혁명의 잔재와 예술이 동시에 존재하는 곳이다.

몽마르뜨(Montmartre)라는 이름의 연유는 프랑스어로 순교자의 산(mountain of the martyr)이란 뜻과 어원으로 그리스 신화와 연관된 마르스(Mercure)와도 인연이 있지만, ‘순례자의 산’이라는데 더 마음이 간다. 오랫동안 로마의 박해에 시달려왔던 성자들이 순교해서 지하에 잠들어 있던 수도원으로 오래전부터 성지순례지 중 하나였던 곳, 그중 전설 속의 9세기 생드니 신부(Saint Denis)가 순교해서 조그만 교회 지하에 묻혀있다는 그의 죽음 전설은 매우 섬뜩하다. 그 언덕 옆에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우뚝 서 있는데 우리가 몽마르뜨라고 불르는 곳이 바로 이 주변을 가리킨다.

이 사크레쾨르 성당(Basilique du Sacre-Coeur)은 프로이센 전쟁에 패배해서 시민들이 사기가 떨어졌고, 또 프랑스 대혁명 중 무고하게 희생된 민중들의 영혼을 위로하고 속죄하는 의미에서 건축했다 한다.

이곳이 학살의 장소로 부각된 이유는 파리 전 지역에서도 물론 그러했지만, 특히 이곳은 가난한 민중들이 외곽인 이곳에 모여 살면서 정치비판 등이 많았던 곳이라 1791년 프랑스 최초 공산주의인 파리코뮌(Paris Commune)이 만들어졌던 곳이고, 그들도 많은 정부군에 의해 탄압을 받으며 희생당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학살하는 격동기에 비극을 낳았고, 대혁명기 10년 동안은 시민들이 서로가 재수가 없으면 하루아침에 길로틴(guillotine)으로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니… 그 숫자는 3만여 명이나 되어서 우리의 제주도 4.3항쟁 희생자 수에 맞먹는다. 이때도 성당 옆 수도원 수녀들도 어느 쪽 편을 들지 않았다 하여 대량 참수당했던 피의 장소였다. 문은 굳게 닫혀있고 오래된 세월의 흔적만이 외롭게 남아있다.
성당 정문 앞에는 프랑스의 구원군 성녀 잔다크(Jeanne d’Arc)와 유일하게 국왕이 성인으로 시성된 루이 9세의 동상이 마치 성당을 경호하듯이 서 있다.

언덕 자체는 129m로 그리 높지 않으나 평지에서의 언덕은 꽤나 높아 보인다. 파리에서는 노트르담성당((Notre-Dame)과 이 성당의 규모가 제일 크다.

하지만 몽마르트는 우리에겐 예술적 낭만적 거리로만 들린다. 형식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찾아서 예술가들이 모여든 시기는 대혁명 이후이다. 그들의 예술적 고향… 왜 그들은 이곳으로 모였을까?
확 트인 조망에 모든 풍경이 다 그림이 되었을 거다. 또한 초기에는 파리 외곽이라 주세(酒稅)가 면제되었고 모든 숙식값이 파리시내에 비해 저렴했던 것도 가난한 예술가들한테는 인기가 있었고, 예술가들이 모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특히 르느와르 세잔 모딜리아니 시슬레 반 고흐 등이 묵으면서 창작활동을 했다는 간판이 눈에 띈다. 음악인으로는 쇼팽과 에릭사티(Eric Satie), 작가는 에밀졸라, 발자크 등이 이곳에서 열정을 불태웠다.

특히 언덕 입구의 우리가 아는 캉캉춤의 발원지인 무랑루즈(Moulin Rouge)라는 캬바레는 매춘과 환락의 장소로 툴루즈(Toulouse Lautrec)는 13년 동안 무희들의 아픔을 나누며 그곳에서 그림을 그렸고 기거했던 장소로도 유명하다.
아직도 예쁘고 아담한 레스토랑들, 그 위의 숙박업소들 건물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다. 지금은 거리의 무명 화가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초상화를 젊은 모습으로 그려주고 있다. 골목마다 예쁘고 자그마한 기념품 가게 등으로 관광객을 유혹하는 이곳은 많은 예술인의 혼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장소로 놓칠 수 없는 곳이다.

 

언덕 위까지 코끼리 열차로 이동할 수 있다. 이런 건물 2층은 예술가들이 숙박했던 여관 같은 곳이었다.

 

가운데 동판으로 이곳을 다녀간 수많은 예술가들 이름이 새겨 있다. 주로 1850년을 전후로 시작. 졸라 드가 시슬레 르노아르 고흐 등

 

열심히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길거리 화가들

 

고흐가 머물렀던 집의 벽에 걸린 장식품

 

사크레쾨르 대성당 왼쪽에 잔다르크 청동 조각상. 그 옆에는 루이 9세 조각상이 있다.

 

몽마르뜨 언덕 입구의 작은 기념품 가게 골목

최서현 기자  lavita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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