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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와!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처음이지? (1)지속가능발전의 시작을 찾아서
한국여성연합신문 | 승인 2020.02.28 17:47

최근 들어 우리는 ‘지속가능한’이라는 용어를 많이 접하고 산다. ‘지속가능한 정치’, ‘지속가능한 산업’, ‘지속가능한 마을교육공동체’, ‘지속가능한 경제’, ‘지속가능한 사회사업’, ‘지속가능한 관광’ 등… 심지어 이 단어와 잘 어울릴까라는 곳에도 ‘지속가능한’이 보인다. ‘지속가능한 장난감’, ‘지속가능한 패션’ 등. 기업에도 ‘지속가능한 경영’, ‘지속가능한 경영철학’ 등으로 심심찮게 쓰이는 듯하다.

평범한 단어에 ‘지속가능한’을 쓰면 뭔가 있어 보이고, 달라져 보여 쓰는 걸까? 작년 서울시 시민참여회 포스터에 적힌 글귀를 보면 얼마나 우리가 ‘지속가능한’을 고민 없이 사용하고 있는지를 알게 된다. ‘시민 손으로 뽑은 정책, 지속가능할까요? 지속가능하지 않을까요?’ 하긴, ‘지속가능한 연애’라는 말도 인터넷에서는 검색되니, 그야말로 ‘지속가능한’이 만능랩으로 등급되는 순간이다.

평생교육과 마을교육공동체에 기반을 두고 연구하는 나 역시 과거에는 ‘지속가능한’이라는 용어를 아무런 생각 없이 써왔었다. ‘지속가능한 네트워크 협력체계’, ‘지속가능한 마을교육공동체’, ‘지속가능한 교육공동체 형성’, ‘함께하는 지속가능한 학습동아리 모임’ 등 마치 끊이지 않고 요동칠 그 무엇이 담겨있는 심오한 마법의 힘이 담긴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나는 과거 학술논문에 제출한 논문 제목의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를 매섭게 지적한 이름 모를 심사자를 통해(이 지면을 빌어 정말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스스로 ‘지속가능한’ 용어를 신중하게 바라보고 용어 사용을 자중하기 시작하였다. 어느 순간 유행처럼 쓰고 있는 이 용어, 우리는 정말 ‘지속가능한’ 용어를 제대로 바라보고 깊게 생각하며 쓰는 걸까?

본격적으로 ‘지속가능한’에 대한 단어를 알아보자. 먼저, 국어사전을 보면 ‘지속가능한’이라는 단어는 없다. ‘지속: 어떤 상태가 오래 계속됨. 또는 어떤 상태를 오래 계속함’, ‘가능: 할 수 있거나 될 수 있음’이 명사와 동사 형태로 찾아진다. 그렇다면, 외국물을 먹은 단어일까. 영어사전을 검색해보니 ‘sustainable’이 눈에 띈다. ‘sustainable은 형용사로 (환경파괴 없이)지속가능한’, ‘오랫동안 지속(유지)가능한’으로 해석된단다.

그런데 단어를 찬찬히 뜯어보면, 이 단어도 2개의 단어가 결합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sustain+able’. sustain은 동사로 ‘(필요한 것을 제공하여) 살아가게(존재하게/지탱하게)하다, 계속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고, able은 형용사로 ‘할 수 있는, 재능있는, 능력 있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탱 가능케 하는 능력’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래서 국내 학계에서는 ‘sustain development’를 ‘지속가능한 발전’ 혹은 ‘지탱가능한 발전’으로 번역할지에 대해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지속가능한’으로 합의되어 사용하고 있지만, 그 당시 다양한 영역에서 ‘sustain development’를 위해 단어의 결을 닦았던 사람들이 고민을 했다면 좀 더 나은 번역이 나오지 않았을까? 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지속가능한’이 고민 없이 나온 단어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안다.)

‘지속가능한’을 좀 더 깊숙이 살펴보자. ‘지속가능한’의 명사인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을 생태학 측면에서 보면 ‘생태계가 생태의 작용, 기능, 생물 다양성, 생산을 미래로 유지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인간 사회의 환경, 경제, 사회적 양상의 연속성에 관련된 체계적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반면, 경영학에서의 지속가능성은 ‘장기간 지속되는 실제 이익과 생산의 증가’로 나타낸다고 한다. 드러나지는 않았겠지만, 다른 학문이나 영역에서도 ‘지속가능성’을 나름의 개념과 정의를 내리고 다양하게 재해석했을 것이다(제발 그러기를 바란다). 그래서 앞서 나열했던 ‘지속가능한 정치’, ‘지속가능한 산업’, ‘지속가능한 마을교육공동체’, ‘지속가능한 경제’ 등이 쏟아져 나온 것이 아닐까.

이처럼 지속가능성은 매우 가변적인 용어로 다양한 의미를 포함할 수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그 의미를 이해하지만, 실제로 그 의미를 수용하고 정의하기에는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속가능발전·지속가능교육에 발을 담근 지 1년 조금 넘은 내가 ‘지속가능성’ 단어 사용에 예민하게 구는 까닭은 UN대학 RCE(지속가능발전교육 거점도시) 인증을 준비하면서 느낀, 묘한 그 무엇이 있어서일 가능성이 크다.

RCE 인증 준비로 지속가능발전과 지속가능발전교육에 연계된 사람들과의 매듭 맺기와 풀기, 의도치 않게 튕겨지기를 반복할 때마다 고민하고, 또 고민했던 시간들… 그러한 시간을 한 텀 끝나고 뒤돌아 본 나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이란 용어의 느낌은 이렇다. ‘역동적이면서도 느슨하게 꿀렁거리는 파동이 유기적으로 연결을 하는 듯 싶은데, 미로의 틀에서 꼼짝을 안함.’

앞으로 기고할 글은 철저하게 평생교육과 마을교육공동체 연구자로, 현장에서 이제 막 지속가능발전교육에 삽질을 하려는 RCE(지속가능발전교육 거점도시) 담당자의 ASMR(자율감각쾌감)버전으로 쓸 예정이므로, 글의 풍성함은 고이 접어주기를 바란다. 겁이 없어서 ‘어서와! 지속가능발전교육은 처음이지?’를 연재하려고 부탁자의 요청에 냉큼 오케이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터진 보이니, 흘러가는 대로 써내려가련다. 혹시 아는가? 나의 ASMR 잡글이 훗날 어딘가에서 맨땅에 삽질을 할 지속가능발전·지속가능발전교육 담당자의 아리아드네의 실이 될지.

― 배현순 박사 (RCE도봉구 담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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