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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의 하숙집 고모네를 꾸리다「말레이시아의 한국인」 18. 한국 서비스업의 진출(1)
배명숙 기자 | 승인 2023.08.27 22:42

○이름: 한문희 
○인터뷰 날짜: 2021.11.14
○인터뷰 장소: 암팡 잘돼지 한국인 식당 및 자택
○이주 연도: 1992 (31년 거주)
○생년: 1949 (74세)

한국인들이 해외에 나와 살아도 입맛이 변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한국음식을 찾게 되고 한국식당, 한국 식료품점, 한인 하숙집이 발달하게 된다. 말레이시아에 정착할 때까지 하숙하며 거쳐 간 한국사람이 많아서 말레이시아에서 이분의 음식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라고 하는, 고모라고 불리는 한국 하숙집 주인이 있다.

이분은 한국에서 22살부터 13년 동안 특수한 직업을 갖고 있었다. ‘숙수’라고 하는 회갑 등 상차림에 올리는 고임 음식 전문가였다. ‘과방쟁이’라고도 했다. 1985년 이태리 한식당에 초청을 받아 요리사로 가게 되었다. 종로구청에서 반공교육 5일을 받고 직항이 없어 일본을 거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1박하고 기차로 로마 떼르미니역에 도착했다. 바티칸 옆에 있는 한인 레스토랑에서 근무했다. 1년 후 국제결혼을 해서 아들 요한이를 낳고 6년간 살다 1991년 한국에 귀국해서 8개월을 지내다가 1992년 말레이시아에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에 오게 되었다.

고모가 말레이시아 생활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다. 아들 요한이가 혼혈아라 한국에서 산 8개월 동안은 상처뿐이었다. 92년 11월 수방공항에 도착했을 때 엄마로서 안심이 되었다고 한다.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요한이와 피부색이 같았기 때문이었다. 당시에는 체류 비자 때문에 3개월에 한 번씩 밤기차로 싱가포르에 다녀와야 했다.

요한이 어렸을 때 국제학교에 보냈는데 여러 인종이 섞여서 씩씩하게 잘 자라 주었다. 학교에서 학예회를 했는데 직장 때문에 아이를 연습에 데리고 다닐 수가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데 공연날 한 아이가 못 나오는 바람에 요한이가 대신 맡게 되었다. 필름을 사서 아는 사람에게 찍어 달라고 부탁했다. 요한이가 대역인데도 잘했다고 한다. 요한이는 세이폴 국제학교를 거쳐, 무티아라 국제학교, 대학은 Limkokwing을 졸업했다. 말레이시아는 좋은 나라다. 요한이가 차별 없이 당당하게 잘 자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친정어머님이 요한이 태어날 무렵부터 이태리에 오셔서 돌봐주셨고 말레이시아에도 함께 오셨다가 2008년 요한이가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94세로 소천하셨다. 샤알람에 있는 크리스찬 납골당에 안치했다. 요한이를 길러주신 어머님께 감사드린다.

1992년에는 한성, 고려원 등 한식당이 5개 정도 있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신혼여행 팀이 단체로 100~150명씩 오던 시절이었다. 한성식당에서 일하다가 1년 반 만에 투자자를 만나 고모네 카페를 시작하게 되었다. 고모네 카페는 말레이시아 최초의 한국식 다방이었다. 3년 1개월을 했다. 그다음에 자금을 마련해서 고모네 한정식을 차렸다. 한국 관공서에 계신 분들이 현지인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하고 조용히 접대할 곳이 마땅히 없을 때였다. 그래서 3층짜리 집을 임대해서 한국식으로 시설을 했다. 방 6개를 태극문양 등으로 꾸몄다. 그때는 방앗간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중국식품점 재료로 시루떡과 인절미를 만들고 신선로도 만들었다. 당시 다른 한식당에서는 김치찌개가 12링깃 정도이었는데 고모네 한정식은 인당 50링깃을 받았다. 제일 비싼 집이었다. 2년 반을 했다. 그런데 숯불갈비 식당이 등장하면서 한정식 인기가 줄어들었다.

그래서 하숙집을 시작했다. 말레이시아 건설 붐으로 한국 대기업 건설회사들이 나와 있었고 겨울이면 한국에서 따뜻한 말레이시아로 필드하키, 축구, 볼링 등 전지훈련을 나왔다. 선수촌과 겐팅 숙소로 도시락 배달을 하기도 했다. 한인회 최송식 회장 시절이었는데 한인 체육대회와 한인 볼링대회에 모두들 참가하여 하나가 되었다. 30년 말레이시아 생활 중에서 그때가 가장 따뜻했다. 하숙을 하면서 침대 1개에서 시작해서 집 7채 방 21개까지 늘렸다. 그런데 하숙집은 Air B&B가 생기면서 하향길로 접어들었다. 그래서 하숙을 접고 지금은 김치와 반찬을 판매하고 있다. 나는 김치, 반찬 등 전통 음식을 잘한다. 단골가게가 있고 온라인으로도 주문을 받는다. 아들이 온라인 사이트를 만들어 주었다.

요한이는 이태리에서 태어나 18세에 국적을 선택해야 했는데, 한국을 선택했다. 대학교 졸업 후 첫 직장으로 대교 눈높이 말레이시아에서 근무했다. 삼성물산 등을 거쳐 지금은 SK의 Socar에서 일하고 있다. 이제는 내가 아들의 부양가족이 되어 합법적으로 체류하게 되었다. 앞으로

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좋아하는 요리를 계속하면서 살 것이다. 1985년부터 지금까지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드리며 살고 있다.

― 배명숙, 서규원, 이규용 「말레이시아의 한국인」

 

[좌] 아들의 돌잔치에 차린 고임음식  [우] 아들의 대학 졸업식

배명숙 기자  msbae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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