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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겁, 지겁` / 김남권
김순조 기자 | 승인 2024.03.16 19:41

                허겁, 지겁

                                        김남권

주천 파주 식당 앞 버스정류장에
어르신 몇 분 나란히 가을 햇살을 받고
앉아 있다
제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지 황둔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지 모르는 할머니들이 앉아 서로의 안부를 묻고 호구조사를 하는 동안, 형제슈퍼에서 나온 아저씨 한 분. 빵과 우유를 할머니에게 건넨다
"에구구, 이걸 어쩌나 내가 괜히 배고프다는 얘기를 해가지고 비싼 빵을 사오게 했네"
두 시 반이 지나도록 점심값이 아까운 할머니의 혼자 말을 들은 아저씨가 슬그머니 슈퍼에 들러 빵과 우유를 사가지고 나와 무심하게 전해 주었다
할머니는 허겁지겁 빵을 먹고 우유를 마시고 허리를 편다
저렇게 수십 년을 배 곯아가며 자식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생각했을 것이다
택시비도 아까워 한두 시간씩 정류장에 앉아
햇살을 세고 있었을 것이다
젊은 시절 겁 없이 걸어 다녔을 수십 리 길을
이젠 버스로 십여 분이면 도착하지만
기다리는 시간이 몇 곱절은 더 길어진
아무리 생각해도 본전 생각이 나는
겨울 버스정류장에서 점심시간을 한참 지나 
아들 같은 남자가 건네주는 빵과 우유를 먹는다
속은 허해지고
겁은 많아지고
시간은 없는데
끊어지지 않는 겁劫은 기약도 없이 멀어진다

 



손녀가 둘이나 있어 할머니가 되었다. 여즉 호칭 할머니는 아직 불리지 않고 있다. 고교생이었을 때 나의 할머니는 70이 넘었었다. 내가 80이 다 되어 가니 검정색 실이 안 보인다. 바늘에 실을 좀 꿰어줄까나라고 부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당연한데도 불구하고 부끄럼이었다.
언제나 미안한 게 할머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시에 누군가에게 자리를 양보받으면 고맙다고 하면 되는데 미안하다고 했다.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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