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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 교육 이주와 아버지의 합류「말레이시아의 한국인」 24. 교육 이주(3)
배명숙 기자 | 승인 2023.11.29 20:34

○이름: 이용장 
○인터뷰 날자: 2021.10.10
○인터뷰 장소: 자택 온라인 구글 미트
○이주 연도: 2018 (6년 거주)
○출생: 1973 (50세)

2021년 말레이시아에 살고 있는 한국인들의 99%가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이 한시적인 비자로 체류하고 있었다. 이것은 말레이시아 비자 정책의 영향이 크지만, 한국인들의 이주에 대한 인식 변화에도 영향을 끼쳤다. 한국을 영원히 떠나 말레이시아에 적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됐다. 일시적 이주와 전면적 이주를 명확하게 구별하지 않게 됐다. 해외여행과 인터넷을 통한 정보 소통이 자유로워지면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국내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생각했다. ‘다국적 이주(Transnational Migration)’라고 명명되는 이런 이주형태는 국제적인 기동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영어가 국제어화 하면서 어느 나라에서든 취업이나 창업을 할 수 있고 생활 조건이 맞으면 체류를 하다가 생활이 어려워지면 한국으로 귀국을 했다가 또 다른 나라에서 기회를 찾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해외로 나올 때는 관광비자나 가디언비자로 나온 다음 일자리를 찾으면 취
업비자로 바꾼다. 해외 취업과 국내 취업에 경계가 없어지고 거주지가 글로벌화 한다.

나는 한국에서 해군 장교로 군기지 건설일을 했고 전역 후에는 회사 생활을 했다. 2010년 아들이 호주에서 유학을 했다. 나도 해외경험을 해 보고 싶어서 호주에 갔다. 처음에는 가디언 비자로 갔다가 화장실 등 바닥에 타일을 까는 일을 하게 됐고 그 일로 창업을 했다. 호주는 임금이 높아서 노가다(육체노동) 등 몸을 쓰는 일을 해서 돈을 벌 수 있다. 호주에서 한국분들은 타일과 청소업을 많이 했다. 건설회사를 창업하고 한국분들을 고용해서 타일 일을 했다. 2010년 호주 서부 퍼스로 갔는데 이 도시는 철광석 등 광산업 경기가 좋았고 건축업 경기도 좋았다. 그러나 원자재 가격 하락의 영향으로 경기가 나빠졌고 2016년부터 부동산 가치가 하락했다. 건축업 경기도 좋지 않아져서 2017년 8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가서 아들이 고1·2학년을 다녔는데 학교 적응을 잘 못했다. 그래서 2018년 다시 말레이시아로 나오게 됐다. 처음에는 관광비자로 왔다가 비자가 필요해서 일반무역 회사 창업을 했다. 창업을 하려면 사업계획서가 필요해서 현지에서 회사를 만들고 회계처리, 비자 신청 등을 해주는 현지 에이전트의 조언을 받았다. 식당을 하려면 요식업 라이선스가 필요하고 식당 자리 임대 등이 필요햇다.

그러다 영어학원에 취업을 했다. 학원 경영주는 중동 사람으로 리비아, 요르단, 러시아, 일본에서 온 성인과 대학생을 주 고객으로 하고 있었다. 말레이시아는 무슬림 나라라 중동에서 많은 무슬림들이 왔다. 미국, 호주에 비해 물가가 저렴하고, 풀장이 있는 집도 월세가 싸고, 쇼핑하고, 여행하고, 골프와 맛집도 즐길 수 있고 한국과 가깝고, 필리핀보다 안전해서 한국에도 잠재 수요가 있었다.

나는 이 영어학원에서 한국에서 ‘한 달 살기’로 영어 배우러 오는 학생을 유치하는 일을 했다. 8월 한 달에 100명 정도를 유치해서 영어 캠프를 했다. 한국의 강남, 홍대 등에 있는 유학원과 네이버 마이 말레이시아, 다음 굿모닝 말레이시아 등을 통해 유치했다. 한국학생은 초등학생들이 많았다. 성인·대학생들의 경우 미국이나 호주로 유학가기 전에 영어수업을 받고 IELTS 준비를 했다.

조기유학은 보통 엄마가 아이 2명을 데리고 왔다. 한 달 살기의 경우 1,000만원 정도 썼다. 주로 몽키아라의 새로 지은 아파트나 호텔에 많이 살았다. 월세가 150~200만원 정도 됐다. 학비는 하루 6시간, 주당 30시간에 100만원 정도 들었다. 식비 100만원 그리고 여행비도 100만원 정도 들었다. 주말에 여행을 했다. 따라서 말레이시아에는 한국인 관광가이드가 많았다. 성수기에 관광가이드는 월수입이 3만 링깃 정도 된다고 한다.

말레이시아는 한 달 살기뿐 아니라 장기 조기유학을 많이 와서 이들을 상대로 학원과 유학원을 하시는 사람들이 많았다. 영어를 주목적으로 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초중등을 마친 후 대학 전형에 6년 특혜, 12년 특혜 등으로 수도권 대학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호주, 영국, 홍콩 등의 대학을 보내기도 했다.

자녀가 국제 학교에 들어가면 부모 중 한 명만 가디언 비자를 받을 수 있었다. 보통 엄마에게 주고 아버지는 받기가 까다로웠다. 또 다른 방법은 부모가 대학원에 입학해서 학생비자를 받으면 동반(dependent) 비자로 배우자와 아이들이 올 수 있었다. 동반가족 비자 수수료가 2,500~3,000링깃으로 다른 비자에 비해 저렴한 편이었다. 사립대학이 수십 군데 있다. MBA 등을 할 수도 있다. 주재원은 한국 급여 수준이라 급여가 높고, 숙소, 자녀 학비, 차량, 비자 문제 등이 해결되어 좋았다.

그런데 2019년부터 코로나로 학생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되어 대부분 학원이 문을 닫았다. 그래서 나도 일단 한국으로 들어갔다. 부모님이 한국에 계신데 연세가 많으셔서 자주 아프셨다. 아들이 말레이시아에서 2년제 대학을 마쳤는데 군대 갈 나이가 되어 한국에 들어갔다. 아들이 군대를 마치고 나면 다시 대학에 들어가야 하는데 호주나 미국 쪽으로 갈 수도 있다. 나도 한국에 들어가서 취업이 안 되면 말레이시아로 다시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 분은 한국에 들어가서 청년들을 해외 인턴으로 내보내는 일을 시작했다.

조기유학은 부모 중 한 명이 해외에서 생활하며 아이들을 보호하는 기러기형과 친인척 또는 지인의 집에 아이를 하숙 형태로 맡기는 홈스테이형, 학교 근처에 합숙소를 설치하고 전문 교사가 학생들의 생활관리와 방과후 학습을 돕는 관리형 유학이 있다. 그동안 자녀를 유학 보내고 부인은 자녀와 해외에 있고 남편은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 기러기 가족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자녀교육을 위해 아빠가 동행했다. 자녀의 해외교육을 중시하는 한국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 한국의 안정적 직업보다는 자녀와 함께 하며 해외에서 가능한 어떤 일이라도 했다. 자녀의 학업을 위해 본인의 커리어를 접었다. 이분에게 거주지는 자녀의 학교가 있는 곳이고 해외취업은 국내취업과 다를 바가 없이 자녀의 학비와 생계를 위해 필수적이었다.

요약하면, 이분의 경우 2010년부터 22년에 걸쳐 한국-호주-한국-말레이시아-한국의 경로를 거쳤다. 아들의 호주 조기유학에 동반하여 해외생활 경험을 하고 영어도 익혔다. 일정기간 조기 유학 후 한국으로 돌아갔으나 자녀가 한국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자 다시 말레이시아로 나왔다. 가장으로 학비를 대기 위해 직업이 필요했다. 호주에서는 타일 일, 말레이시아에서는 영어학원에서 유학생 유치 일을 했다. 아들이 군대를 가 있는 동안은 연로하신 부모님도 모실 겸 한국에 있겠지만 아들이 해외 대학으로 복학하면 또 다른 나라로 옮길 것으로 예상된다.

― 배명숙, 서규원, 이규용 「말레이시아의 한국인」

 

어디에 있든 조국을 잊지 않는다. 쿠알라룸푸르 어학원 근무 당시 한국청년, 우즈베키스탄 한인 3세, 재일교포 3세 학생들과 함께 3·1절을 기념하며 사진을 찍었다.

배명숙 기자  msbae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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