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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 학교의 이주 어린이와 청소년「말레이시아의 한국인」 23. 교육 이주(2)
배명숙 기자 | 승인 2023.11.23 21:34

○이름: 서규원
○인터뷰 날짜: 2021.10.16
○인터뷰 장소: 수방 커피숍
○이주 연도: 1990 (33년 거주)
○생년 1966 (57세)

말레이시아는 영주권과 시민권을 쉽게 주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들과 자녀들은 말레이시아 거주 기간과 상관없이 한국인으로 남게 된다. 영주권이나 시민권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경우에 대비해 한국인들은 자녀들에게 한국어와 한글을 가르친다. 말레이시아 한국인학교는 한국어와 국사를 가르치고 설날 행사 등을 통해 전통문화와 한국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있다.

말레이시아 한국인학교는 유아부터 고2까지를 위한 토요 한국학교로 1974년 Jalan Ampang의 Fatima Kindergarten을 빌려 개교했다. 유아 9명, 초등 저학년 25명, 초등 고학년 7명, 중고 10명으로 총 51명이었다. 2013에는 학생 수 380명, 교직원은 33명으로 증가했다. 학생 수가 600명을 넘기도 했다. 이렇게 학생 수가 늘어남에 따라 더 많은 교실이 필요해서 Good Shepherd School(1986), Fairview International School(1996), Sayfol International School(1999) 등 한국인거주지가 있는 Ampang의 여러 학교를 옮겨 다녀야 했다. 독자적인 건물을 갖기 위해 1980년부터 건물마련 만찬회를 열고, 대사관과 함께 학교 설립 설문조사(2005), 공청회(2006)를 거쳐 한국인학교 사무실을 열고(2006) 2012년에는 US20만 달러의 기금 마련에 성공한다. 2013년에 사이버자야에 말레이시아 한국국제학교 기공식이 있었고 2016년 한국국제학교가 개교하면서 주중에는 한국국제학교로 토요일에는 한국인학교로 운영 된다. 주말 한국인학교 2014년 입학금은 RM300, 1학기(6개월) 학비는 초등 RM540(월90), 중등은 RM600(월 RM100)이었다. 2018년에도 같았으나 외국인도 수학이 가능해졌으며 외국인은 한 학기 RM900이었다.

한국인학교의 체육대회는 학생들뿐 아니라 학부모가 참여하고 말레이시아 한국인 전체가 참여하는 단합의 장이 되기도 한다. 1975년부터 체육대회가 열렸는데 유·청소년 풋살 대회와 재마한인회체육대회(2011)로 발전했다. 1989년부터 한마당 학교문집을 창간하여 한국어 글짓기를 장려하고 2006년부터 한글날 글쓰기와 독서화 그리기 대회를 개최했다. 2007년부터 학부모회가 주최하는 설날큰잔치는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장이 되었고 2007년부터 국사를 가르쳐 한국인의 뿌리를 심는 역할도 했다. 2013년에는 세계한국어웅변대회 예선을 개최하였다. 2006년부터 매년 교사연수회를 하고 2011년부터는 교복을 입히고 학생보험 가입을 하는 등 체계를 갖추었다.

한국교육부에서는 대학입학전형 시에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대학입학특별전형을 실시하였고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해외에서 공부한 학생끼리 따로 경쟁하게 했다. 말레이시아 한국인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한국의 좋은 대학에 입학했다. 국제학교를 다니고 오랜 해외 생활로 대학에 진학 후 한국의 문화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무사히 학업을 마치고 한국에서 취업하거나 말레이시아로 돌아오거나 미국 등 제3국으로 진출하기도 한다.

국제화와 영어능력을 기르는 등 말레이시아 생활에서 오는 장점이 있지만 이들의 말레이시아에서의 어린 시절이 즐겁지만은 않았는데 친한 친구들과 이별을 자주 경험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떠나올 때 이별을 하고, 말레이시아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이 한국으로 돌아가거나, 본인이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공부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는 학생들과 한국을 그리워하는 학생도 있다. 2013년 한마당에 발표한 말레이시아 생활에 대한 학생들의 글을 살펴본다.

 

자료 출처: 한마당, 말레이시아 한국인 학교 문집

 

예1) 고등학교 1학년, 1년 체류 후:
한국에서 성적이 좋지 않았고 부모의 권유로 말레이시아의 국제학교에 입학하고 한국인이 경영하는 홈스테이에 살면서 주말 한국학교와 한국인교회를 다닌다. 영어를 배우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말레이시아 생활에 감사하고 있다. 적응이 잘 된 경우이다.

내가 여기 온 것은 2012년 12월이었다. 나도 이곳에 올 줄은 몰랐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이곳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곳 환경이 낯설고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서 집밖으로 나가는 것도 겁냈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집에 있는 언니, 오빠, 친구들 덕분에 이곳에서 쉽게 적응할 수 있었다. 현재 Sayfol International School에 다니면서 외국인 친구도 사귀고 영어도 배우고, 배운 영어로 대화도 해보고 한국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이곳에서 경험할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 공부도 잘 안 하고 성적 역시 잘 나오지 않던 내가 이곳에서 영어로 조금이나마 끄적여서 쓸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이다. 한글 자막 없이 외국영화를 본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영어공부 한답시고 이곳 영화관에 가서 해석은 어렵지만 잘 보고 있다. 그리고 아직 많이 가보진 못했지만, 우리집 식구끼리 바닷가도 가보고 현지음식도 먹어봤다. 한국음식과는 색다른 맛이었고 내 입맛에 맞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다 보니 말레이시아 사람 이외에 중국인, 이란인, 인디안 등등 많이 볼 수 있다. 그래서 더 다양한 문화를 배울 수 있다. 이곳은 생각보다 한국 상점과 식당들이 많다. 나는 이곳에서 한국교회도 다니고 한국인학교도 다니고 있다. 외국에서 이런 것들을 보니 반갑고 신기하다. 그리고 한국문화가 여기까지 잘 알려져 있는 게 자랑스럽다. 이 생활이 재미있고 흥미로웠으면 좋겠다. 이곳까지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드린다.

예2) 중학교 2학년: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을 슬퍼한다.

모든것은 꼭 헤어지기 마련… 소중하다는 걸 깨닫는다. 항상 그래 왔고 늘 그럴 것이다. 처음에는 너무나 신기하고 좋지만, 막상 오랫동안 간직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당연하다는 듯 마구 대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누구든, 그 무엇이든, 곁을 떠나면 너무나 소중하고 슬프다는 걸 알게 된다. 전학 가는 아이들,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는 친구들, 떠난 아이들, 하나하나가 내 시야에서 사라지니 얼마나 소중한지 알게 되었다. 비어 있는 내 옆자리, 웃어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줄어든다는 생각에 난 너무나 슬프고 아팠다. 언제나 새로운 사람이 찾아와서 행복을 준다.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운 장난감을 받는 것처럼. 하지만 내 마음 안에 있는 그 옛 친구들의 자리가 너무나 차갑고 무겁다. 그 추억들이 머리에 맴돌아 보고 싶어진다. 나는 절대로 애들을 떠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끝까지 옆에 있어주고 말동무가 되어 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런데 2013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한국으로 갔다. 놀러 가는 것도 아닌 공부하러 가는 것이었다. 나도 친구들의 곁을 떠나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었다. 이 사실을 알자 난 친구들의 소중함을 더더욱 느끼게 되었다. 또한, 학교 갈 때마다 많이 웃어 주고 말동무가 되어 주고 칭찬도 많이 해주었다. 친구들의 웃음, 장난과 사랑이 너무나 좋았고 행복했다. 그 많고 많은 소중한 것들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지금도 눈물이 난다. 지금은 너무나도 슬프다. 갑작스러운 일들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들이 찾아와 나를 반겨줄 거라고 믿는다. 또한 난 언제나 옛 친구들이랑 연락은 할 수 있으니 안심이 된다. 소중한 것들은 지금 이 순간 내가 하고 있는 모든것에 속해 있는 사람들과 물건들이다. 그러므로 나는 더더욱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겨 많은 사람들을 웃게 하고 싶다.

예3) 중학교 1학년:
8살에 말레이시아에 와서 6년 거주했다. 처음 도착했을 때 영어를 못해 힘들었고 그때 영어를 가르쳐 준 친구를 잊지 않고 그리워한다. 사귄 지 1년 후 전학을 가게 되어 5년간 소식을 모르는 상태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그날 오후였다. 엄마께서는 짐을 싸고 계셨고 아빠께서는 우리 가족이 말레이시아로 아예 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처음에는 들어보지도 못한 말레이시아였지만 지금은 여기서 벌써 6년이나 지났다. 물론 이곳에서의 생활이 편하지만 처음 왔을 때는 정말 불편했다. 그때 많이 도움이 된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8살 때 이곳에 도착한 후 바로 서투른 영어 실력으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들뜬 마음으로 등교한 첫날, 결국 반 친구들에게 한마디도 못 하고 자리에만 앉아 있었다. 머리는 텅 비었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교실은 한국에서 다녔던 학교의 교실보다 작고 선생님들께서는 이상한 천으로 머리를 둘러싸고 계셨다(히잡). 그렇게 말을 아예 하지 않으며 일주일이 지난 후였다. 담임선생님께서 말을 거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선생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도 모른 채 고개만 끄덕였다. 
선생님께서 내게 말을 거신 후로 나는 학교에 가는 것이 두려웠고 누군가 내게 말을 걸려고 하는 것 같으면 바로 피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영어 학습지를 풀지 못하고 낑낑대고 있을 때 짝꿍이 옆에서 조용히 답을 써줬다. 그래서 조용히 입모양으로만 고맙다고 말을 했다. 친구가 미소를 지은 것으로 보아 알아들은 것 같다. 아마도 그때 처음으로 학교에 와서 한 말일 것이다. 그리고 다음 날, 나는 용기 내어 그 친구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이름은 리즈였고 놀랍게도 영국인이었지만 한국말을 했다.
그 뒤로 우리는 정말 친해졌고 리즈는 내게 영어를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서로의 집에도 매일같이 놀러 갔고 리즈 덕분에 나는 서서히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는 나는 다른 반 친구들과도 대화를 나누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나는 더 이상 친구들에게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날 오후 아빠께서 학교를 옮기신다고 하였다. 리즈랑 헤어져야 된다는 것을 알고 너무 슬펐지만, 꼭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학교를 떠났다. 
리즈와의 약속은 지금까지도 못 지켰고 그 뒤로 한번도 연락을 한 적이 없다. 그러나 나는 단 한 번도 리즈를 잊은 적이 없고 내가 지금 영어를 이만큼이나 할 수 있는 것은 다 리즈 덕분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있다. 이제는 서로 연락도 안 하는 사이지만 지금까지 리즈를 잊은 적이 없는 만큼 계속 잊지 않을 것이다.

예4) 초등 3학년:
2살부터 6살까지 같이 논 한국 친구를 10살인 지금 말레이시아에 와서도 그리워하고 있다.

안녕? 나야. 2살 때부터 6살까지 같이 놀은 거 기억하지? 근데 내가 6살 때 아산으로 이사 갔지. 그때 나는 슬펐어. 2년 뒤에 내가 너네 집에 가서 보드게임하고 놀이터 가서 놀고 집에 돌아가야 할 때 네가 편지를 주었지. 나는 집에 가서 매일 그 편지를 읽었어. 9살 때 네가 내 집에 왔을 때 너는 더 의젓해 보였어. 우리 집에 와서 그림 그리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저녁밥 먹고 갈 때 ‘언젠가 다시 만나겠지’ 하고 생각했어. 하지만 말레이시아에 가게 됐지. 그래도 나는 말레이시아에서도 컴퓨터랑 카카오스토리로 네 사진을 보고 있어. 카카오스토리 보면서 공부를 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 네가 꼭 한번 말레이시아에 와서 같이 놀고 싶어. 그럼, 안녕. 너의 영원한 단짝 친구.

예5) 초등 3학년:
같은 학교와 학원을 다녔던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가서 그리워한다
안녕, 나는 너의 학교 친구 ○○야. 잘 있니? 한국은 지금 겨울이어서 춥지? 한국이 여기보다 좋지? 나도 한국에 몇 번 가봤는데 여기보다 좋더라. 학교는 잘 다니고 있지? 넌 지금쯤 날 잊어버렸을 거야. 우리 같은 학원 다닐 때 기억나니? 그때 학원에서 내 생일파티를 할 때 다들 내 생일인지 몰랐는데 내 친한 친구인 너는 알고 선물까지 줬지? 그거 쓸 때마다 너를 생각하며 쓰고 있어. 하지만 난 니가 한국 가고 안 돌아온다는 소리를 듣고 슬퍼했어. 나를 위해서 돌아와 주면 안 되겠니? 제발 돌아와 줘. 너의 친구.

예6) 초등 2학년:
엄마 아빠에게, 나는 말레이시아에서 있는 것이 재미가 너무 없다. 나는 한국에 가고 싶다. 엄마 아빠, 한국 가서 살아요. 한국에는 사촌언니들도 있고 이모도 있고 할머니도 있잖아. 나는 바닷가도 가고 싶고 서울숲도 가고 싶어. 엄마 아빠, 제발 한국 가자. 나 사촌언니들이랑 이모들이랑 놀고 싶어. 사랑하는 엄마 아빠에게.

예7) 초등 5학년:
숙제가 없는 빨래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

아침 햇살에 빨래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한 옷은 따뜻한 햇살에 자려고 준비하고 다른 옷은 도망가려고 앞으로 뒤로 흔들거렸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옷들이 할 일이 없어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른 빨래들처럼 주렁주렁 자유롭게 매달려 살고 싶다. 빨래들은 정말 좋겠다. 왜냐하면 나처럼 숙제가 없고 공부도 안 하니까. 나는 정말로 부럽다. 내 인생도 빨래처럼 자유로웠으면 좋겠다.

― 배명숙, 서규원, 이규용 「말레이시아의 한국인」

배명숙 기자  msbae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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