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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유학생 한국어 교육자가 되다「말레이시아의 한국인」 23. 교육 이주(1)
배명숙 기자 | 승인 2023.11.16 23:54

○이름: 서규원
○인터뷰 날짜: 2021.10.16
○인터뷰 장소: 수방 커피숍
○이주 연도: 1990 (33년 거주)
○생년 1966 (57세)

한국인들은 다양한 이유로 해외이주를 했다. 1860년대에 대규모 흉년이 들자 국경을 넘어 간도·연해주 등지에서 농사를 지었다. 1903년부터 1905년까지 7천여 명이 하와이 사탕수수밭에 노동자로 이민하였으며 1905년에는 1,000여 명이 멕시코 에네켄 농장으로 이주하기도 했다. 식민시대인 1939년에는 만주, 사할린, 일본 등지로 노동자 징용 및 징병으로 인한 강제이주가 있었으며, 1937년 연해주에 살던 한국인 18만 명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기도 했다. 해방 이후에도 여러 가지 사정으로 돌아오지 못한 미귀환동포가 있었고, 6·25 한국전쟁 이후에는 국제결혼, 전쟁고아, 해외입양 등 특수이주도 있었다. 1962년 해외이주법 제정 이후에는 파독 광부, 파독 간호사, 남미 농업이민이 있었다. 최근에는 해외유학 등 다양한 유형의 이주자가 있다. 말레이시아는 유학생의 비율이 높은데 초기 유학생과 자녀교육과 영어교육을 위해 이주를 한 사람의 인터뷰를 살펴보겠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종로 YMCA에 다녔는데 전택부(1915~2008) 선생님을 존경했다. YMCA가 양담배 불매운동을 벌이면서 학생운동을 하게 되었다. 대학 때는 야학도 했고 구로공단에 취업해서 노동운동을 하기도 했다. 1990년 은사님의 제안으로 말레이시아로 나오게 되었다. 유네스코 유학보조금으로 1,000링깃을 받았다. 당시 방값이 150~180, 버스비 0.5, 커피 0.6, 쿼티아우 국수 2, 맥도날드가 5.4링깃이었다. 처음에는 현지인 교수님 댁에 있다가 부킷빈땅(Bukit Bintang) 현재 파빌리온 자리에 있는 숙소로 옮겼다. 근처에 공립수영장이 있었고 우체국에서 부모님께 국제전화를 걸고 공과금 내기도 편리하고 학교까지 가는 버스가 있었다. 지금 Sungei Wang Plaza (Jalan Sultan Ismail, Bukit Bintang, 55100 Kuala Lumpur) 근처다. 

당시 유학생은 대기업 상사 주재원 자녀와 한국외대 말레이인도네시아어(마인어)과 출신 학생들이 있었다. 유학생 출신으로 말레이시아에 체류하고 있는 분 중에 말라야 대학의 김금현 교수, 할랄식품 유통업을 하고 2020년 말라카 국왕으로부터 다툭(Datuk) 작위를 받은 이마태오氏, 파빌리온에서 다온 한식당을 경영하는 이난경氏 등이 있다. 한인회장을 했던 故 이광선氏도 유학생이었다. 

충남 온양 출신인 이마태오 회장은 고교 졸업 후 말레이시아의 국영기업체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이주했고, 현지에서 서다야칼리지를 졸업했다. 한국에서 군복무를 하고 돌아와 1994년 무역업체를 차리고 사업에 뛰어들어 한국 식품을 공급하는 대형유통업체 KMT(Korea Malaysia Trading)그룹으로 키웠다. KMT그룹은 온라인과 홈쇼핑 관련 자회사, 마트, 외식 사업도 운영하고 있다.

유학생 이난경(Lee Nan Kyung)氏는 1990년대 부산에서 쿠알라룸푸르에 도착하였다. 외로운 유학생활 속에서, 동향인 부산에서 말라야대학(UM)에 유학 온 송미영氏의 인도로, 동남아선교센타를 드나들었고, 한국인교회(담임; 노종해목사)도 다니게 되었다. 동남아선교센타에 드나든 것은 한식밥상과 김치 때문이었다. 최완숙 사모님은 열대의 나라에서 외로이 분투하는 유학생들을 환영해 주었고, 한식밥상을 차려 주었다. 밥상과 김치는 향수를 달래 주었고, 기숙사로 돌아가는 유학생들에게 김치 한 봉지씩 싸 주기도 하셨다. 이난경氏는 유학생활을 끝내며 부깃빈땅(Bukit Bintang)에 대형 쇼핑몰을 건설하여 관광객의 쇼핑천국으로 발전시킨다는 정부정책을 접하고 한식당 투자를 모색하였다. 화려한 대형 쇼핑몰인 파빌리온(Pavilion)이 건설되었고, 투자자들을 모집하였다. 지인들과 교민들이 신중하기를 권하는 때에 과감하게 한국식당 투자를 하였고 5층 고급식당 층에 내부 인테리어를 갖추고 한식당 다온(Daon) 개업에 들어갔다. 송미영氏는 말라야대학(University Malaya, UM)에서 학위를 마치고, 한국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다.

故 이광선氏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아랍어를 전공했다. 대학 1학년 때 이슬람교 신자가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한 대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말레이시아 국제이슬람대학교(International Islamic University of Malaysia)에서 국제학생들을 받는다는 소식을 한국 이슬람사원에서 들었다. 이슬람대학교라고 하니까 이슬람 성직자들을 양산해내는 종교대학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말레이시아 국제이슬람대학교는 상경대, 법정대 등 제반 학부들이 모두 설립되어 있는 일반 대학교이다. 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으며, 교양필수로 이슬람 과목을 듣기만 하면 된다. 1984년 말레이시아 국제이슬람대학교 경영학과를 입학하여 졸업했다. 그런데 말레이시아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하기가 여의찮았다. 한국에서 대학 3학년 1학기까지 마치고 왔지, 군대도 다녀왔지, 또 말레이시아에서 4년 학부 과정을 끝냈지, 그러다 보니 한국의 기업에서 원하는 신입사원 공채 조건인 나이 제한에 걸렸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 정착해 개인 사업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는 한국인들의 고충을 알고 한인회장으로 봉사하며 문제 해결을 했다. 당시 기러기 가족들이 은행에서 수표구좌를 열 수가 없어 현금을 많이 들고 다녀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강도를 당하는 일이 생겼다. 한인회에서 해당 은행장을 만나, 한인회가 보증을 해주면 수표구좌를 개설해 줄 수 있는지 협상도 하고, 그 과정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개해 주고, 암팡포인트 앞 육교 설치도 진행 사항을 한인회 홈페이지를 통해 알려주는 등 교민들의 숙원을 해결해주는 역할을 했다.

서규원氏가 유학을 하던 시절에는 코리아나라는 한국인 가라오케가 있었다. 사장님이 저녁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아르바이트를 주셨다. 월 800링깃이었다. 저녁에 이 한국인 노래방에서 판갈이 (DJ) 아르바이트를 했다. 카운트도 보고 맥주도 가져다드렸다. 그때는 말레이시아에 한국 건설업이 붐(성황)이었다. 중동에서 한국 건설 붐이 사그라지면서 근로자들이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말레이시아로 왔다. 이분들은 자신들을 중동따라지라고 불렀다. 이분들 중에는 말레이시아인 부인과 결혼한 경우도 있었는데 대화 단절로 힘들어했다.

90년대에 대형 공사는 대우가 93년에 따낸 플라자 라키야트, 대우의 비전 시티(3억 달러), 플라자 라자 종합개발(2억8천만 달러); 현대건설의 가스처리공사 4호기(2억 1천만 달러), LNG2공장 확장공사(1억1천만 달러), 삼성건설의 KLCC(1억 4천만 달러), 진로건설의 바카우 신도시개발(1억  3천만 달러) 등 20여 건에 달하고 있었다.  24개 한국건설업체들이 무려 124건, 50억 달러에 육박하는 공사를 했다.

이때 해외여행이 자유화되면서 말레이시아로 신혼여행과 단체 효도관광이 시작됐다. 여행사에서 2박3일 상품을 많이 팔았다. 그래서 가이드를 했는데 할머니 단체 관광객들이 손주뻘 되는 저를 안타깝게 생각하셨는지 팁을 주시곤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공부를 게을리해서 학점이 안 나와서 어느 날 정신을 차렸다.

그러다 친구 3명이 자본금 3만 링깃으로 여행사를 차렸다. 94년 친구들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 라오스, 베트남 안케고지(638고지, 안케패스)를 지나 하노이까지 여행을 했다. 1996년에는 제1회 South East Asia Cross Country Rally가 열렸는데 경로는 쿠알라 룸푸르 - 태국 – 라오스 비엔티엔으로 약 7,000㎞의 오프로드를 달리는 것이었다. 참가하기 위해서는 국제자동차연맹(FIA)에서 공인하는 선수 라이센스가 있어야 했는데 한국은 당시에 회원국이 아니어서 말레이시아에서 발급받아 참가했다. 토요타 랜드크루 지프차로 갔다. 97년에는 험로를 달리는 레인 포레스트 챌린지(RFC)라는 정글 랠리에 여자가 포함되면 참가비 4,000링깃을 면제해 준다고 해서 한인회에서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과 같이 참가했다. 경로는 Kuala Lumpur - Penang - Kuala Terengganu로 정글지대를 지나는 것이었다. 코스가 험해 3일 동안 정글에 갇힌 적도 있었는데 먹을 것도 없고 씻을 곳과 화장실이 없어도 잘 견디어 주었다. 이후 결혼해서 아내가 되었다. 그런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여행자가 급감했다. 씨에프랑스, 온누리여행사, 국광여행사 같은 큰 여행업체도 도산했다.

여행사를 접고 컴퓨터 판매업을 했다. 말레이시아 한국인 컴퓨터업 1호였다. 그런데 사간 컴퓨터가 컴퓨터바이러스로 작동이 안 되면 After Service(AS)를 해주었다. 그때는 컴퓨터바이러스 백신이 보급되지 않았을 때라 날밤을 새며 바이러스 청소를 해야 했다. 결국 접었다. 이후 KOTRA에 기술이전담당관으로 현지 채용되어 한국이 보유중인 공급기술과 현지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수요 기술을 연결하고, 기술사업화에 필요한 기술금융을 지원했다. 나집 라작 前 총리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간 인력 양성을 위한 협약식을 이끌어냈다.

한국어 교육은 문영주 영사님의 소개로 동방정책으로 한국에 가는 유학생들에게 한국어 교육을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UiTM(Mara University of Technology)의 부속 기관이었던 INTEC (International Education Center)에서 한국어 교육을 담당하고 있었다. 서울대와 협업을 했는데 서울대에서 강사파견을 해 주기도 했다. 후에 UiTM과 INTEC은 분리되었으나 말레이시아 정부 유학생 파견사업은 여전히 INTEC에서 계속하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으로 유학 가는 말레이시아 정부장학생은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Washington Accord를 요구한다. 워싱턴 어코드는 대학의 학부 공학 프로그램 인증제도로 한국, 말레이시아, 미국, 영국 등 약 30개의 국가가 가입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 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Education of Korea)에서 담당한다. 말레이시아 국비유학생은 워싱턴 어코드에 인증된 프로그램에만 등록할 수 있어서 대학 선택도 한양대, 인하공대 등 인증된 대학으로 제한되고 프로그램도 기계공학, 전기공학, 화학공학 등으로 한정이 되었다. 사이버 보안, 애니메이션, 생명 공학 등 첨단 프로그램은 인증에 시간이 걸려서 늦게 개설된다는 문제점이 있지만 하나씩 하나씩 범위가 넓어지고 있다. 

정부장학생 이외에 자비로 한국으로 유학 가려는 학생들도 있다. 이런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2015년 TAR UC(Tunku Abdul Rahman University College)에서 개설되었다. 단국대에서 강사를 파견해서 일정기간 한국어를 가르친 다음 TOPIK 3급을 통과하면 단국대 3학년으로 편입하는 과정이었다. 단국대에서는 장학금과 기숙사를 제공했다. 나는 유사한 프로그램을 Uni KL(University Kuala Lumpur)에 개설하고 코디네이터로 취업했다. 한국 공과대학으로 진학하기 위한 대학준비과정(Foundation in Science and Technology for Korean University)으로 자비로 한국어 토픽 3급을 목표로 수업을 했다. 수업은 한국어로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도 잘 되고 있다. 현재 나는 말레이시아국립대학(University Kebangsaan Malaysia, UKM)의 청소년 역량강화센터(PERKASA)의 GENIUS라는 프로그램에서 한국어를 가르친다. 한인회 부설 한국어교육원에서 한국인들을 위한 온라인 문화 강좌와 말레이시아인을 위한 한국어 강좌를 기획했다.

― 배명숙, 서규원, 이규용 「말레이시아의 한국인」

 

말레이시아 여학생 한국 노래 합창. 한국어가 꿈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배명숙 기자  msbae9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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