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오피니언 칼럼
한국인 스포츠 코치 말레이시아 대표팀을 지도하다「말레이시아의 한국인」 22. 한국 서비스업의 진출(5)
배명숙 기자 | 승인 2023.10.23 20:27

○이름: 오종봉
○인터뷰 날짜: 2021.10.16
○인터뷰 장소: 암팡 스타벅스커피
○이주 연도: 1990 (33년 거주)
○생년: 1959 (64세)

한국은 역사적으로 활쏘기를 잘 했지만 국제대회에 최초로 참가한 것은 1978년 제8회 방콕 아시아양궁경기대회였다. 이어 1984년 한국 양궁 사상 최초로 올림픽에 참가하여 LA에서 서향순 선수가 여자 개인 금메달을, 김진호 선수가 여자 개인 동메달을 획득하였다. 한국 양궁은 세계정상으로 올림픽 개인 및 단체 메달 기록을 가지고 있다.

인천대학에서 양궁 선수생활을 했던 오코치는 80년부터 강원도 순회코치, 서울시 순회코치 등을 거쳤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여자 금메달리스트인 조윤정 선수와 양창훈 선수를 발굴 육성했다. 서울여고 코치로 있다가 말레이시아 양궁협회의 요청으로 1990년 말레이시아로 왔다. 말레이시아가 양궁 강화를 위해 한국에서 코치를 초빙한 경우로 15명 내외의 선수층을 조련해서 1995년 동남아게임(SEA)에서 여자 단체전 은메달을 따내는 성과를 거뒀다. 말레이시아는 이 대회를 계기로 양궁을 동남아대회의 전략종목으로 채택하고 양궁 육성에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1995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38회 세계양궁선수권대회, 1997년 경주에서 열린 코리아오픈양궁대회에도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했다. 당초 1년만 있을 예정이었으나 실력을 인정받아 재계약을 거쳐 2001년까지 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봉급 수준도 현지 차관급이었다.

나는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양궁을 가르쳤다. 일주일에 한 번 군인들을 훈련했고 주말에는 시니어를 가르쳤다. 한국에서 훈련할 때는 하루 400발을 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한국처럼 매일 풀타임으로 운동을 하지 않았다. 체육학교도 주중에만 연습을 했다. 양궁은 장비가 비싸서 개인이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정부나 단체에서 장비를 비치하고 생활체육으로 저변 확대를 하는 것이 좋다. 주니어 층부터 두터운 선수층이 있어야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다.

처음에는 말레이어만 들어도 스트레스가 생겼지만, 말레이어와 영어를 학원에서 배우며 적응했다. 이제는 한국보다 말레이시아가 더 편하다. 지금은 대장금 식당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산다. 양궁에는 애착이 있어서 요즈음도 양궁장에는 가끔 들린다.

 

1995, 동남아 여자단체전 은메달

 

말레이시아에 있는 한국 체육인으로 펜싱의 정충회氏, 태권도 이병희氏 등이 있다. 정충회氏(76세)는 60년대 한국의 펜싱 태동기 때 선수 생활을 했다. 그 당시엔 국제경기 참여는 없었지만 전국체전에 펜싱 종목이 있었다. 선수 생활 이후엔 1978년 방콕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한국 대표팀 지도를 맡아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 직전까지 선수들을 지도했다. 코치에서 물러난 후 대만으로 건너가 대만 펜싱대표팀 감독을 맡아 오세아니아선수권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올렸다. 이때의 활약상을 지켜본 말레이시아 체육계의 초청으로 1988년 말레이시아로 와 대표팀을 지도하게 되었다.

정충회氏가 처음 말레이시아에 왔을 땐 선수도 부족하고 의사소통도 안 돼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길을 가다가 체격이 좋은 청년들을 보면 설득해 체육관으로 데려가 무료로 지도해서 선수로 육성하는 노력을 한 끝에 동남아시아게임(SEA GAME)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1989년 동남아시안게임에서 말레이시아는 펜싱 10개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했다. 금1, 은 4, 동 5개의 눈부신 성과로 정충회 씨는 일약 말레이시아의 펜싱 코치로 이름을 날렸다.

말레이시아에서 펜싱 선수들은 오랜 기간 선수촌과 같은 곳에 모여 훈련하지 않는다. 평소에는 전국의 클럽에서 연습하는데 클럽의 지도자들이 정충회氏가 지도한 제자들이 많다. 말레이시아의 선수 Kuan Lin Tar를 한국 인천 중구청 펜싱팀에 보내 집중훈련을 받게 하기도 했다. 제자들과 학부형들의 권유로 정충회氏는 ‘펜싱 아카데미’를 열어 청소년들을 지도하기도 했다. 펜싱을 통해 한국의 얼을 말레이시아에 심어온 정충회氏의 보람을 말레이시아의 수많은 펜싱 클럽에서 느낄 수 있다. 그는 재마대한체육회 회장으로 말레이시아 한국인들을 위해서 봉사했고 2008년 여수에서 열린 전국체전에 말레이시아 교민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선수단을 파견하기도 했다. 재마대한체육회는 2007년 대한체육회의 말레이시아 지부로 승인된 단체로 재마태권도협회 등 각종 교민 스포츠 관련 협회가 협력단체로 가입되어 있다.

말레이시아에서 한국 태권도는 이병희 사범이 보급하고 있다. 용인대 태권도학과를 나와 수원대 체육교육 석사과정 중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앞두고 3개월간 말레이시아 태권도 선수팀 코치를 맡았다가 현지에 눌러앉았다. 당시 가르친 선수가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해 고무된 말레이시아 정부가 대표팀 지도를 계속해달라고 요청해 남게 됐다. 말레이시아에 태권도를 처음 보급한 사람은 주말레이시아 대한민국 초대 대사 최홍희氏로 대사관저 마당에서 태권도를 가르쳤다고 한다. 지금은 태권도 동호인이 인구의 10%인 300만 명에 달할 정도로 늘어나 말레이시아 국민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대표팀 지도자에서 물러난 뒤 ‘월드태권사범연수원’이라는 태권도장을 운영하던 이병희氏는 2014년 국기원 태권도 해외파견 사범으로 임명되면서 도장을 현지인 제자에게 물려주고 말레이시아 경찰청에서 제자를 양성하고 있다. 이 사범은 특수기동대원 6만명 전원을 유단자로 만들기 위해 지도자를 양성하는 데 집중했고 일부는 국기원에서 정식 사범으로 인증을 받았다. 이들이 말레이시아 전역의 특수기동대로 흩어져 태권도를 본격적으로 가르고 있다. 이 사범은 20만 명에 달하는 경찰 전체가 태권도 유단자가 되도록 보급하는 것이 목표이다. 태권도가 경찰 최고의 호신 무예로 자리 잡도록 노력하고 있다.

그는 말레이시아의 학생들을 한국에서 열리는 태권도 한마당에 데리고 가기도 한다. 참가한 선수들은 각국에서 출전한 수준 높은 선수들의 경연도 보고 친구도 생기는 데다 태권도 종주국을 방문하는 일이라서 입상을 못 해도 참가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했다. 무예를 가르치기 전에 규율을 준수하고 어른을 공경하고 인내심을 키우는 인성부터 가르치기 때문에 태권도는 인기가 높다.

은퇴를 앞두고 경찰제자들이 마련해 준 한국식당을 사모님과 꾸리며, 도장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며 여생을 말레이시아에서 보낼 것이다. 말레이시아에는 양궁의 오정봉, 펜싱의 정충회, 태권도의 이병희氏처럼 장기 체류한 체육인 외에도 말레이시아 사격 코치를 맡았던 박상순氏, 말레이시아 배드민턴 코치를 맡았던 박주봉氏가 있었다.

― 배명숙, 서규원, 이규용 「말레이시아의 한국인」

배명숙 기자  msbae999@naver.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배명숙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4537,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80, 522호(명동2가, 가톨릭회관)  |  대표전화 : 02-3444-0535  |  팩스 : 02)587-0708
등록번호 : 서울, 아03927   |  등록일 : 2015.10.07   |  발행인 : 정찬영  |  편집인 : 변자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자형
Copyright © 2023 한국여성연합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