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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 생 미셸 (Mont saint michel)
최서현 기자 | 승인 2020.12.15 12:10

몽 생 미셸(Mont saint michel)… 몽(mont)은 마운틴의 프랑스어이다. 그러니 프랑스식으로는 ‘성자 미셸산’이다. 미셸은 영어로는 마이클,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는 미카엘이다. 미셸은 용맹과 힘을 겸비한 대천사, 수호천사이다.

 

수도원이 한눈에 들어오는 포토존

 

8C 초에 베네딕트회 소속 오베르 대주교가 꿈속에서 3번이나 미카엘 천사가 나타나 계시한 장소인 예배당

709년에 오베르 대주교가 미카엘의 계시를 받고 그 자리에 예배당을 지었으며, 10세기에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을 세우고, 11세기에는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 오랜 시간 걸려서 증축 보수를 하면서 건설했다.

프랑스 북서부의 노르망디 해역으로 파리에서 4시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니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육지에서 600m 정도 떨어진 섬이지만 조석 간만의 차가 커서 만조 때는 섬처럼 그러나 간조 때는 육지와 연결이 가능하다. 1689년부터 시작된 영국과의 백년전쟁 때 영국의 침입을 막아낸 요새로서의 역할도 컸으며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는 감옥으로도 사용되었다 한다.
섬 높이는 80m로 100미터가 안 되지만, 그 위에 157m의 수도원 성당을 고딕으로 건설했으니 제법 높아 보이고 우람한 모습이다.

 

(좌)고딕 첨탑 위에 금으로 치장한 미카엘 천사 수호신. 그의 칼은 악마를 물리치고 그리스도인들의 영혼을 수호하는 의미를 지녔다.   (우)교회 중앙 돔. 최소한의 돌로 건축했다고 한다.

 

교회 회랑에서 바라다본 정원 안뜰. 정숙, 절제, 평화, 고독… 오로지 하느님과의 대화만 허락되었을 수도원의 생활 중 유일하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자유의 공간


1979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다. 지금은 만조 때도 외지 사람들이 쉽게 드나들 수 있도록 데크로 다리를 놓아서 누구나 육지에서 쉽게 순례하는 마음으로 걸어서 갈 수 있다.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 데크길… 나도 이 길을 따라 마을까지 한 시간 반 정도 걸었다.


입구에는 안내소와 호텔들, 카페,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이 관광객들의 눈길을 끌며 들어서 있고 올라갈수록 좁은 골목길로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실감하게 된다.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성(城)처럼 일단 성안에 들어가면 마을을 형성하며 오래 갇혀 있어도 음식이 동이 날 때까지 성직자와 주민들이 버틸 수 있는 그런 비슷한 구조이다. 지금은 주민들이 40여 명쯤 된다고 한다.

 

입구에 들어서면 하룻밤에 몇백짜리 방도 있다는 호텔이 눈에 들어온다. 마을 안에 기념품가게와 유명 식당 등이 있다.

 

중간부터 초기 예배당 모습이 나오면서 점점 가팔라지면서 수도사들이 기거했던 어두운 기도실을 지나니 어느덧 꼭대기에 성당과 넓은 회랑이 마술처럼 나타난다. 모두들 감탄을 머금으며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성당 조망대에서 툭 터진 바다를 바라보면 걱정거리 등은 순식간에 바람과 함께 날아가 버린다. 힐링의 시간이다. 오래전 수행했을 수도사들의 고난과 역경을 짐작해본다. 또한 어두운 방에서 프랑스 혁명기에 억울하게 갇혀 있었던 죄수 아닌 죄수들의 심정도 헤아려본다. 한참 동안의 건축 강의가 이어지고 이번에는 다른 길로 내려온다. 오를 때 보지 못했던 다른 쪽의 바다와 갯벌을 보면서 우리와 다른 풍경도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아기자기한 골목들을 다시 한번 둘러보며 내려올 때쯤이면 어느덧 배가 고파지고 서둘러 음식점으로 향해야 한다.

 

가는 동안 비구름을 만나 비도 맞았다. 운 좋게도 햇무리도 떴지만, 카메라에 다 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저녁은 성 밖에 위치한 유학생이 추천해준 양고기집으로 정했다. 동생과 나는 버스를 타지 않고 걷기로 작정을 하고 한 시간 반 정도 걸었다. 그 사이 바닷가의 변화무쌍한 날씨 덕에 비를 맞거나 모래 섞인 강한 바람 세례도 받으며 앞으로 전진이 힘들 정도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짧았지만 아주 고통스러웠다. 집도 건물도 없는 마치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순례길이 따로 없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온 후 쌍무지개로 위로받았으니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 드디어 식당이 보이자 안도를 하였다.
 
이 집은 양고기 스테이크로 유명하단다. 양고기가 맛있는 이유는 성 밖에는 지형적 특수성으로 간척사업으로 목초지를 만들고 그 위에 양을 키워서 미네랄이 풍부한 풀을 먹으며 자란 양고기가 특유의 냄새가 없어서란다. 미리 소금간도 되어있어서 미각을 돋군다는데 그러나 나만 예외인지 양고기 특유의 냄새를 맡고 나서는 위에서 거부를 한다. 동생은 다행히 다른 메뉴를 주문해선지 잘도 먹는다. 오래전 뉴질랜드에서 맛본 스테이크에는 민트 소스가 있어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용감하게 주문했는데 민트 소스가 없단다. 요즘엔 한국에서도 심심치 않게 양고기 구이집이 눈에 띈다. 꼬치구이나 숯불구이로 불맛을 입어 특유의 냄새는 없었는데 이곳의 유명한 식당에서의 맛은 아무래도 초보한테는 힘들었다. 수 세기 동안 양고기 문화에 익숙한 사람들과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맛집이라 꽤나 관광객들로 붐볐는데 아무래도 김치문화에서 온 나에게는 김치 생각만 날 뿐이었다.

동생과 나는 다시 바닷가로 가서 노르망디 해안을 거닐기도 하면서 저녁 해넘이 광경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보고자 했던 예쁜 석양은 나타나지 않았고 기대에 못 미친 검붉은 구름띠만 보일 뿐이었다. 벌써 어둑해지기 시작했고, 그날따라 날이 흐려서 하늘을 원망해야 했다. 다시 성으로 야경을 보기 위해 부지런히 돌아갔다. 벌써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들이 번쩍거리며 사진에 담기 바빴다. 주변엔 인가도 빌딩도 없이 오직 저 미셸 성만 보이니 그 자체가 환상인 것이다. 그냥 야경만 잘 찍어도 카드가 되는 순간이다. 우리도 사진 찍기 바빴지만 11월 초의 추위와 강풍은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못 남기게 됐다. 흡족한 사진이 한장도 없었던 것이다. 강풍으로 죄다 흔들렸다.
 
차 안에서만 8시간을 보냈으니 종일 버스를 탄 것 같지만 사이사이 작은 어촌들을 들러서 아점도 먹고 지루하진 않았다. 새벽 4시에 파리에서 출발하여 종일 투어하고 호텔로 들어가니 다음날 새벽 3시 반이었다. 정말 독한 한국 여인들이다. 
 
코로나가 끝나서 프랑스 여행이 재개되면 꼭 몽셸미셸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그러나 충분한 시간을 갖고 투어하는 것이 좋겠다. 가능한 그곳에서 숙박을 권한다. 우리는 하루를 쉬는 날로 정했는데 그걸 못 참고 동생이 주선을 했다. 그러나 안 갔으면 후회할 뻔했다. 그 다음날은 쉬어야 했다. 바게트와 커피를 먹으며 느긋한 하루를 보내는 것도 즐겁다. 

일반인들은 물론 종교에 상관없이 작가나 예술가들에게도 상상력이 마구 펼쳐질 것 같은 아름답고 신비스런 성 미카엘(미셸) 바위산이다.

 

사진 찍는 기술이 부족했던 몽생미셸의 아름다운 야경

최서현 기자  lavita5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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