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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즈버 태평연월
한국여성연합신문 | 승인 2022.12.12 21:32

1985년 중학교 졸업에 아버지가 오셨다. 엄마와 아버지는 내가 10살 때 이혼을 하셨다. 엄마는 아버지에게 지방 소도시에 있는 집과 농사짓는 땅과 현금도 상당 수준을 드리고는 우리(4남매)들을 데리고 서울 용산구 용문동으로 이사를 오셨다.

서울 생활은 좋았다. 깨끗하고 튼튼한 2층 다가구 주택이 우리집이었기 때문이다. 한가지 감수해야 할 것은 이제 아버지는 같이 안 산다는 것이다. 엄마는 상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었고, 서울에 집을 마련하고 어찌 보면 무능했을 아버지와 헤어지신 것이다. 엄마 입장에서 자식은 5명에 남편은 벌지 않고 있으니 가장으로서 삶의 무게는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을 것이다. 엄마는 서울 장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깨끗하게 입고 자라는 모습에 엄마도 당신의 자식들을 서울에서 공부시키고 싶은 소망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 소망에는 아버지는 없었다.

아버지는 내가 중학교 졸업할 때 나타나셨다. 7년 만의 일이었다. 우리는 빠르게 서울 생활에 익숙해졌고 아버지를 잊은 건 아니지만 아버지의 존재가 아픔이고 부담스러운 존재였는데, 아버지는 자식들이 보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졸업식이라는 명분을 갖고 아버지는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런 어색함을 안고 졸업식이 끝나고 인근 식당을 찾았다. 그 식당 이름이 군산식당이었다. 거기서 아버지는 생선구이를 시켜주셨다. 생선구이 맛은 아버지에 대한 연민과 못 본 지 오래여서 어색함이 섞인 맛은 아직도 무슨 맛이었는지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50세에 아내와 아이들과 이별하시고, 2006년 여든의 나이에 세상과 이별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야 우리나라 국군이었고 1953년 한국전쟁 막바지에 군대에 중위로 재직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현재 영천호국원에 안치되었다. 사시는 동안은 대한민국의 광복과 전쟁, 그리고 성장이라는 격변의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살아오시고, 외로운 생을 마감하시었다.

군산이라는 곳도 일제강점기 수탈에 필요한 항구로 활발하다가 전쟁과 성장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군산 하면 옛 일본식 건물은 관광지가 되고 부두에는 생계를 짊어질 어부들의 고깃배가 드나드는 조용한 항구로 되었다. 이 그림에서 격변기가 언제 있었냐는 듯 평화로운 항구의 모습이다.

문득 고려말 충신 야은 길재(1053~1419) 시조가 생각난다. 야은은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와 함께 고려 삼은이라 불렸다. 이 시조가 생각나는 이유는 영웅이든 범인이든 사람은 나고 자라고 죽는데 산천은 유구하며 그 근거지에서 여전히 생산적 활동을 이어가는 것을 볼 때,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서는 것을 목도하며 허무함을 읊조린 성리학자 야은 길재 선생님의 시조를 통해 우리는 겸허함으로 배워야 할 것 같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글 유향숙, 그림 유준

 

「군산 앞바다」, 유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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