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 있다. 이제 갓 태어난 아이는 시간이 많이 남았고 80세는 조금 남았다는 게 아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채로 살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삶에서 가장 확실한 것이다.”
마르틴 하이데거의 말입니다.

또 독일의 철학자이며 소설가인 에른스트 융어는 이렇게 말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은 자신의 사다리를 높이 들고 올라가 버린다.”

이 말의 뜻은 죽어가는 사람이 타고 올라간 사다리를 그냥 놔두고 가버리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아래서 조금은 엿볼 수가 있으련만 죽어가는 사람이 그 사다리를 들고 먼 곳으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땅에 남아있는 사람은 죽음을 영 알 수가 없게 된다는 거지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죽음에 대해서는 3인칭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는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죽음을 진정으로 이해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는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죽음은 남의 이야기로만 생각하지, 바로 나의 일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문제는 톨스토이에게도 같은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톨스토이는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반 일리치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한없이 절망했다. 그는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고 또 이해할 수도 없었다. 내가 죽어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그건 너무 끔찍한 일이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남의 일로만 생각하지, 나의 일로 생각지는 못합니다. 저 또한 죽음은 죽는 다른 사람의 사건이지 나의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날 저에게도 황당한 일이 벌어졌으니까요.

청천벽력과도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것은 남편의 죽음이었습니다. 평소 건강에 별다른 자각증세가 없었던 남편이 가슴이 좀 답답하다고 말하였고, 그러던 차에 한 달 뒤 병원에서 조영 CT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관상동맥 우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해서 바로 그날 입원을 하였습니다. 3일 후에 남편의 검사 결과가 모두 정상이고 아주 건강한 상태이니 수술을 하자는 의사의 권유가 있어서 “그러자고” 허락을 하고 수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남편은 수술을 받고 입원실에도 못 올라가 보고, 중환자실에서 50일 만에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채 그만 세상을 떠났던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가 아무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황당하고 망연자실할 상황이 제 앞에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병원에 갈 때만 해도 서로가 죽음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습니다. 그런데 얼떨결에 그만 죽음이라는 사건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그야말로 천지가 개벽할 일이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치료를 받고 회복이 되면 전과 같은 건강한 몸으로 다시 우리의 삶이 계속되리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의사에게서 외국에 있는 자식들에게 연락하라는 언질을 받던 1주일 전까지만 해도 남편이 ‘죽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전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설마 그 건강하던 내 남편이 죽을까? 그래서 연락하라는 것은 아니겠지……”

그 당시 일어나고 있었던 모든 상황들은 분명한 사실이었는데도 저는 그 사건들이 믿어지지가 않았고 인정할 수가 없어서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려고 애썼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에게 “아빠가 위독하대”하는 말을 전하면서도 저에게는 전혀 실감이 나질 않았습니다.

망연자실한 상태에서도 남편을 이대로 혼자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로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내가 지금 분명 무슨 실수를 하고는 있는데 내가 지금 뭘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어떻게 해야 이 사람을 붙잡을 수 있지? “이 상황은 도대체 뭐야?”

아무리 마음을 추슬러 생각해보려 하지만 제 머릿속은 더 이상 작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행동이 정지된 불가항력의 상태에서 그저 눈물만 흘리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저는 한없이 고마웠던 사람, 끝없이 미안한 사람 그런 분을 놓치게 되었고, 우리는 서로 아무 인사도 나누지 못한 상태로 결국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습니다.

저는 2년에 걸쳐 ‘죽음과 삶’에 관한 공부를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죽음이 ‘내’게 이렇게 빨리 닥치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죽음이란 죽음을 겪는 당사자나 다른 사람의 사건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심지어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면서도 그것은 그저 자연의 순리라고만 여겼을 뿐이었습니다. 그랬는데 내게 닥친 죽음만은 자연의 순리라고 여길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억울했고, 슬펐고, 떠나가는 사람이 그지없이 불쌍하고 미안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 자신의 우매함을 도저히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날 저는 남편과 함께 죽었습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캄캄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곳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속에서는 나비도, 새도, 구름도, 바람도 남편이 되어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남편을 대신하는 그 존재들과 대화하면서 저는 많은 것을 배우며 공부했습니다. 남편이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에서 남편과 저는 우리들 곁에 바짝 붙어 있는 죽음과 친한 친구가 되었습니다.

하마터면 손짓하며 유혹하는 죽음을 따라나설 뻔했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의 호통 소리가 그의 절규가 되어 눈물을 흘리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고, 안타까운 몸부림으로 앞을 막고 있는 아들의 심장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없어도 네 꿈을 맘껏 펼쳐 보라”는 남편의 당부가 제 귀에 들려 왔습니다. 그이의 목소리가 너무도 선명하게 저를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평소 당연히 그 자리에 있는 줄로만 알았던 남편이, 이제는 사라져 그 모습을 볼 수가 없게 된 빈 공간을 점차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어떤 것보다도 “내게 귀하고 소중했던 존재가 이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고, 이 세상 어느 것도 그를 대신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나에게 많은 것을 주기만 했던, 한없이 고맙고 미안한 사람”이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이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깊이 생각할 수 있는 수업도 그곳 동굴에서 받게 되었고, 죽음이 저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도 스스로 알게 되었습니다.

마르틴 하이데거가 말을 했지요? “죽음에 직면해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저는 남편의 죽음을 정작 경험하고 나서야 비로소 저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동굴 속에서의 생활이 결코 불행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나의 삶과 정체성을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마침내 그 길고 어두운 터널을 뚫고 30여 개월 만에 빛이 있는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죽음을 어찌 말할 수 있으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라고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동굴 속에서 죽음을 체험할 수가 있었습니다. 제가 동굴 속에서 인생 수업을 마치고 돌아온 후부터는 감히 “아! 이런 걸 부활이라 말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도 있었습니다. 또한 ‘애도상담사’ 실습교육을 받으면서, 내담자와의 상담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잘해보려 아무리 애를 써봐도 왜 그리도 안 되는지…… 가슴 답답했던 때를 되돌아볼 때면 “승원아! 너는 그때 사별자의 심정을 얼마나 헤아려 볼 수가 있었느냐?”라고 자문해 볼 수도 있게 되었습니다.

음식을 입에 넣기만 하면 구토하게 되고 소화는 물론 먹기가 싫어서 먹을 수가 없으니 체중이 11㎏이나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병원에도 입원을 들락날락하며 병원치료라는 것을 받아 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습니다. 의사의 추천으로 식물을 기르게 된 것이 큰 효과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방치해 두었던 화분들의 다 죽어가는 식물의 생명을 살리는데 몰두하다 보니 생명의 환희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뿌려놓은 씨앗들이 고개를 쳐들고 올라오는 새싹을 경이롭게 맞이하게 되면서 저의 생명도 소생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난 일이라 하여 이렇듯 담담하게 말을 한다고 해서, 저의 ‘애도’의 과정이 다 끝났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아직도 어쩌다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지나칠 때면 가슴이 두근거려 숨이 멎을 것 같은 심정이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어느 병원이든지 출입을 할라치면 그 당시 침대에 누워있던 그때 남편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찢어질 듯한 통증으로 인해서 고통을 받기도 합니다. 언제나 뻥 뚫린 가슴에 뭔가를 채울 수 없는 허전함을 간직한 채, 이성을 잃고 행동함으로써 실수할 때가 허다합니다. 하지만 저는 용기를 갖고 다방면에 관심과 흥미를 가지고 힘써 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남편 없이 혼자 살아가는 길을 개척해야 될 것이고 남은 인생을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삶의 여유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박승원 기자  hpsw374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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