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3주년을 맞아 1942년 중국 충칭에서 실시된 좌·우 독립운동가들이 ‘당(黨)·군(軍)·정(政)’통합을 위한 회의일지를 발굴해 공개했다.

이날 공개된 자료는 보훈처가 지난해 12월 미국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에서 수집한 ｢조지 맥아피 맥큔(George McAfee McCune) 자료집｣에서 발굴한 문건으로,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분산된 항일운동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독립운동 세력 간 이념과 정파를 떠나 전개되었던 좌우 통합운동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문건은 당시 독립운동의 양대 축이었던 ‘한국독립당과 조선민족혁명당 간 통합회의’를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회의는 1942년 4월14일부터 5월4일까지 약 3주 간 총 5차례에 걸쳐 진행됐는데, 이 문건을 통해 양당이 전면적인 통합 문제를 심도 있게 논의한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제1차 회의(1942.4.14~ 4.16)를 기록한 내용에 따르면, 당시 한국독립당에서는 조소앙, 홍진, 차이석이, 조선민족혁명당에서는 김원봉, 성주식, 최석순이 각 당의 대표자로 참여하여 양당의 당(黨)·군(軍)·정(政) 통합을 잠정적으로 합의했다. 구체적 합의 사항은 △통합 당명은 한국독립당으로 할 것(정당 통합) △한국광복군에 조선의용대를 편입할 것(군대 통합) △양당 통합 후 임시정부 국무의원 및 의정원 의원 자리에 대한 보궐선거를 실시할 것(정부 통합) 등이다.

이후 이어진 회의에서는 당 강령 수정 등 세부사안의 합의에 있어 난항을 겪다가 제4차 회의에서 ‘중국 화북지역으로 이동한 조선의용대 대원들의 통합당 가입 문제’로 양당의 갈등이 심화, 결국 제5차 회의(1942.5.4)에서 양당 간의 합의가 결렬되기에 이른다.

조선민족혁명당을 연구한 대구대학교 김영범 명예교수는 “이 문건은 기존 학계에서 확인된 바 없는 자료”로, “1942년 4월20일 임시정부 국무회의에서 조선의용대의 한국광복군으로의 편입을 결의하고, 5월15일 중국 군사위원회가 공식적으로 편입 결정을 내린 것이 순전히 돌발적 사태이거나 일방적 조처였던 것이 아니라, 양당의 지도자들이 직전 회의에서 명시적으로 동의·수용한 내용에 기초한 것이라는 유추를 가능하게 한다”라고 밝혔다.

그동안 조선의용대의 한국광복군 편입이 중국 군사위원회의 지시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문건의 발견으로 당시의 편입 결정에 제1차 회의에서의 군대 통합에 대한 양당 간의 구체적 합의가 바탕이 되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최종적으로는 결렬되었지만 제1차 회의에서 정부 통합에 대해 합의한 것이 같은 해 10월 제34차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조선민족혁명당 인사가 임시의정원 의원에 선출되고 회의에 참석하면서 ‘임시정부 역사상 최초의 좌우통합회의’를 개최하게 된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조선의용대를 연구한 서울시립대 염인호 교수는 “이번에 공개된 문건에 기록된 양당 간의 통합회의는 1940년대에 진행된 중국관내 좌우합작운동의 실체와 역사적 의미를 밝히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보훈처는 지난 1월 ｢한국광복군의 대미 군사연대 제안 공식문건｣에 이어 지난달(3.29)과 이번 달(4.5)에도 1942년 결성된 한국혁명통일촉진회의 ｢대일 심리전 제안문건｣과 ｢좌우로 분열된 독립운동단체와 정당의 통합 촉구｣ 등과 관련한 다수의 문건을 발굴하여 공개한 바 있다.

당(黨)·군(軍)·정(政) 통합을 위한 회의일지 원문, 하와이대학교 한국학연구소(Center for Korean Studies University of Hawai'i at Manoa) 소장

아래는 문건의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 1차 회의(1942.4.14~4.16) : 당(當)·정(政)·군(軍) 통합에 대한 합의안 도출
  ○(정당 통합) 당명은 한국독립당으로 하고, 당헌, 당규, 당강도 기존 한국독립당의 것을 그대로 쓰기로 합의. 단, 당강의 일부는 수정하기로 함
  ○(군대 통합) 한국광복군에 조선의용대를 편입시키기로 합의
  ○(정부 통합) 충원되지 못한 임시정부 국무위원과 의정원 의원 자리는 합당 후 충원하고 보선하기로 합의

□ 2차 회의(1942.4.25) : 한국독립당, 당강 수정 요구를 거부 
  ○1차 회의 대표자들은 합의안을 가지고 각 당의 최종 승인을 받은 후 세부사항을 협의
  ○한국독립당 측에서 조선민족혁명당의 당강 수정 요구를 거부

□ 3차 회의(1942.4.28) : 조선민족혁명당, 당강 수정 요구 철회
  ○조선민족혁명당은 당초 한국독립당에 요구했던 당강 수정 요구도 철회하고 합당 의지를 피력
  ○한국독립당, 조선의용군을 한국광복군에 먼저 편입시킨 후 정당을 통일할 것을 요구

□ 4차 회의(1942.4.29) : 조선의용대의 신당 가입 문제로 대립
  ○한국독립당, 중국 화북으로 이동한 조선의용대 대원들을 신당 가입이 보류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며 조선민족혁명당이 강력히 반발
  ○한국독립당의 ‘신당 창당 후 심사를 거쳐 당원 승인 여부를 결정하자는 수정안’을 조선민족혁명당이 수용

▢ 5차 회의(1942.5.4) : 합의 결렬
  ○중국 화북으로 이동한 조선의용대 대원의 신당 가입 문제, 신당의 간부진 비율 등 사안에서 의견대립으로 합의가 최종 결렬됨

임시정부 역사상 최초로 조선민족혁명당 인사가 의원으로 선출된 임시의정원 회의. 1열 좌측 네번째부터 홍진(洪震, 1962년 독립장), 김구(金九, 1962년 대한민국장), 최동오(崔東旿, 1990년 독립장), 조완구(趙琬九, 1989년 대통령장), 김원봉, 2열 좌측 세번째부터 차이석(車利錫, 1962년 독립장), 조소앙(趙素昻, 1989년 대한민국장), 마지막열 좌측 여섯번째 최석순(崔錫淳). 사진=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조선의용대가 한국광복군에 편입된 직후 촬영한 기념사진. 1열 좌측 세 번째부터 이종희(李鍾熙, ’77년 독립장), 채원개(蔡元凱, ’68년 독립장), 한금원(韓錦源, ’90년 애국장), 김승곤(金勝坤, ’77년 독립장). 사진=독립기념관 제공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