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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의 소리, 번져나가다피어나다 : 정수경展
김순조 기자 | 승인 2021.06.21 18:26

나무는 인내의 상징이다. 보드라운 흙에 약간의 물과 말간 햇살만 주어지면 쉽사리 싹을 틔우고 잎을 열고, 꽃을 피우며 보란 듯 제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뽐내는 지천의 풀, 꽃들과는 달리, 나무는 인내의 상징이다.
척박한 땅에 어찌어찌하여 뿌리를 내렸을 때도 다른 나무들의 뿌리에 옥죄이기 일쑤고, 그나마도 세찬 비바람에 흙이 벗겨져 상처처럼 드러난다. 벌레들의 먹을거리와 새들의 쉼터가 되고, 사람들에게 살 곳을 마련해주면서도 정작 스스로는 조각난 햇볕을 찾아 위로 자라나 제 존재감을 드러낼 뿐이다.

정수경의 나무는 인내의 시간을 이겨내고 하늘로 자라난다. 우리 앞에 길이 있다면, 우리가 어느 길로 갈 것인가 항상 고민하고 헤맬 것이다. 그러나 정수경의 나무가 가는 길은 하나, 위로만 자란다. 파란 하늘을 향해 따뜻한 햇살을 향해 청량한 빗줄기를 향해 위로 갈 뿐이다. 그리고 그런 나무의 인내가 우리에게 '위로'를 준다. ‘그다지 할 이야기가 없다.’는 작가의 눈빛에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아픔, 그리고 말할 수 없는 소리들이 있다는 것을 내비친다. 그래서 정수경은 말할 수 없는, 그리고 들을 수 없는 나무를 자신의 화자로 드러낸다. ‘푸른 나무의 소리를 들어라’(청음 淸音)

정수경의 나무들은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자연은 평화의 산물이 아니다. 삶과 죽음의 드라마이며 끊임없이 펼쳐지는 투쟁의 장이다. 자연은 그 전쟁의 터전이다. 싸움의 승리는 '삶'뿐이다. 자연은 아름다움과 뽐냄과 사랑을 위해 싸우지 않는다. 그저 살기 위해 싸운다. 물방울을 조금이라도 마시기 위해, 햇볕의 작은 조각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 비바람에 좀 더 버티기 위해 나무는 싸울 뿐이다. 좀 더 자라는 가지, 좀 더 초록의 잎, 그리고 가을이면 맺는 열매와 씨앗을 위한 매 순간은 소리 없는 치열한 전쟁이다. 그러나 우리의 눈에, 그리고 우리의 귀에 자연의 투쟁은 평화의 하모니harmony로 들린다.

지금 우리 앞에 펼쳐지는 전쟁의 광시곡狂詩曲 대신, 우리는 처절한 삶의 싸움이 끝나고 생의 찬가를 맞이하는 나무들의 노래를 듣는 것이다. 정수경의 나무들은 그 양립불가능한 이중적인 삶을 담았다. 상흔처럼 떨어진 물감들에서 이중적인 삶을 담았다. 상흔처럼 떨어진 물감들에서 폭발하는 감정의 분출이 드러난다. 작가는 삶의 상처를 다 떨쳐내듯 물감을 떨어뜨린다. 작가의 삶에서 작가의 몸에서 상처란 하나도 남기지 않을 것처럼 그 물감들을 후드득후드득 여름날 세상의 뜨거움을 씻겨내는 소나기처럼 떨어진다. 그러나 그 물감들은 다시 오롯이 캔버스에 담긴다. 캔버스 위에 떨어진 상처의 흔적들은 어두운 초록, 밝은 초록, 노란 초록 그렇게 초록의 생명력을 얻는다. 미친 듯이 하늘을 향해 가는 나무들 사이로 조그마한 하늘이 점점 작아진다. 나무의 생명은 점점 커진다. 나는 더 자랄 거야. 나는 더 클 거야. 나는 더 이야기할 거야. 강박적으로 흩어진 나무의 물감들은 살고 싶다며 미친 듯 제 색을 흔들어댄다. 미친 듯 울어댄다.

나무는 질서를 이루는 복잡성의 산물이다. 얽히고설킨 뿌리들은 양분을 흡수하기 위해 주저 없이 앞으로 나아가면서도 흙 사이의 보이지 않는 틈에 조용히 안착하고, 굳건한 줄기는 뿌리가 빨아들인 대지의 선물을 감사히 위로 올려보낸다. 가지는 또 어떠한가. 어떤 수학적 정리보다도 질서정연하게, 어떤 예술적 비율보다도 아름답게 공간을 가로지르며 공기의 바람과 햇볕을 나눈다. 가지 끝의 잎들은 또다시 작은 우주를 이루어 조그마한 햇볕이라도 남김없이 푸르름에 사용한다.

정수경의 그림에서 나무는 카오스의 고통 속에서 빛을 향해 위로 나아가는 존재다. 아직 질서는 요원하니 생명력의 분출과 초록의 소리는 자신만의 불규칙한 반복으로 혼돈을 벗어난다. 일견 추상표현주의의 폭발적 상처가 자리를 잡는 것도 나무의 줄기, 그리고 나무의 초록이다.
땅에 뿌리를 디디고 하늘로 뻗어있는 가지들은 하늘과 땅 그 사이에 있는 존재들인 우리들이다. 세상 어떤 어려움이 있고, 고통이 있고, 상처가 있어도 그리고 세찬 바람에 흔들리고 넘어져도 굳건히 서 있고 싶은 우리들처럼, 정수경의 나무는 미칠듯한 초록의 흔들리는 잎 속에서도 그 줄기가 하늘을 향해있다. 나는 서 있어야 해. 흔들려도 서 있어야 해. 비스듬하게라도 서 있어야 해. 나무는 소리 없이 소리친다. 그리고 그러한 나무는 하나가 아니다. 그 뿌리와 그늘의 존재는 싫지만 같이 있어야만 세찬 바람을 조금이라도 막을 수 있고, 나무가 아닌 숲을 이룰 수 있듯이, 정수경의 나무들은 다른 나무들과 함께한다. 그 존재를 나누어 갖는다.

그러고 보면 정수경이 그리는 것은 '나무'라는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인고忍苦의 시간을 버텨낸 자연의 '공간'이다. 비록 약해 보일지라도 단단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나무들처럼, 비록 평화로워 보일지라도 생명을 위한 투쟁의 현장인 숲처럼, 그 삶은 모든 어려움과 괴로움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가고 자라나 우리 모두를 넓은 팔로 품어주는 공간이다. 그 공간 속에서 정수경의 나뭇잎들은 부딪쳐 소리를 낸다. 아무것도 없는 무無와 같은 진공의 공간, 순백의 공간이 아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치열한 아우성이 있는 곳. 초록빛 나무의 공간은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다.

꽃이 죽어야 열매를 맺는 아이러니처럼, 어둠이 있어야 빛이 드러나는 아이러니처럼, 정수경이 그리는 소리는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드리핑dripping으로 빗물처럼, 눈물처럼, 피처럼, 물감의 흔적들은 캔버스를 2차원 회화의 평평한 사유공간으로 만들기도, 눈물이 잎이 되어 초록의 물감이 층층이 쌓여 나무들을 이루는 숲의 3차원 깊이로 채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 물감의 자국들은 캔버스라는 커다란 악보 위에 저마다의 소리를 남긴다. 그것은 수많은 악기들이 조화롭고 매끈하게 연주하는 교향곡이 아니며, 커지고 아스러지며 각자의 소리로 울부짖는 불협화음도 아니다. 정수경이 그리는 소리는 귀가 아니라 눈에 부딪히는 감각의 전이轉移를 이룬다. 밝은 하늘과 시커먼 초록의 그늘, 연약하고 부끄럽게 올라오는 연두색의 새로운 잎들과 온 잎을 햇볕에 담가 최절정의 초록으로 터져나는 강인한 잎들까지. 조화와 부조화의 그 어딘가에서 나무의 소리는 삶과 죽음, 밝음과 어두움 가운데 팽팽하게 현鉉을 당기듯, 혹은 느슨하게 바람에 그 모든 것을 맡기듯 공간을 채운다.
들뢰즈Gilles Deleuze가 '초록'이라는 단어가 명사가 아닌 '동사'라고 했듯이, 정수경의 초록은 매번 움직이고 변화하는 '동사'이다. 작가가 인지하는 색 중에서 가장 버라이어티하다는 초록은 그래서 끊임없이 변주한다. 그리고 그 초록의 소리는 하나하나의 음이 아닌 공간을 채우고 자연의 시간을 점유하는 궤적을 이룬다. 자연 속에서 우리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남는 경험을 위즈워드William Wordsworth는 '시간의 점' Sport of Time이라 노래한다.


시간의 점

                        윌리암 워즈워드

우리의 삶에는 시간의 점이 있다
이 선명하게 두드러지는 점에는
재생의 힘이 있어
우리의 마음은 살이 찌고 보이지 않게 회복되머
그 힘으로 기쁨은 고양되고
그 힘은 우리를 파고들어
우리가 높이 있을 때는 더 높이 오를 수 있게 하며
우리가 떨어졌을 때는 다시 일으켜 세운다


정수경이 그리려는 소리 또한 우리를 어루만지며 위안하는 그러한 자연의 소리, '시간의 점'일 것이다. 정수경의 나무들은 어느새 군집을 이루고 있다. 가까이에서 보다가 좀 더 멀리 봐야만 하는 숲을 이루고 있다. 우리의 시야는 나무들이 둘러싼 공간 속에서 들여다보다가 어느새 그 나무들과 함께 나란히 걷게 되었다.
그리고 미칠듯한 초록의 아우성 속에서 이제 작가는 조금씩 꽃을 피우고 있다. 가장 찬란한 생의 한가운데에서 얼마 남지 않은 삶의 아름다움을 찬연히 피우는 꽃들은 작가가 초록 속에 찍는 '시간의 점'이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소리가 아니라 다른이들에게 더 들려주고 싶은 부드러운 음악이다.

정수경이 나무들에게서 듣는 소리는, 정수경이 초록으로 들려주는 소리는 명확하지 않다. 캔버스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으며 나무와 꽃들은 제자리를 지키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발자국 그 속으로 들어가 물감의 흔적들 속에 몸을 맡겨보면, 우리는 생명이 꿈틀대는 그리고 소리가 번지는 그 현장의 한 지점에 서 있다. 앞으로 정수경의 소리가 더 커질지 그리고 더 감미로워질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작가가 그랬듯 정수경이 캔버스로 만들어내는 공간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과 생명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내면의 소리에 즐거이 침잠沈潛하길 바란다. 작가도 그 소리를 만들고, 흘려보내고, 조용히 듣고 그 소리 속을 좀 더 자유롭게 유영遊泳했으면 좋겠다. 침묵의 소리가 주는 그 위안 속에서.

― 미술평론가 전혜정

 

[위]화음 [아래]청음. ‘피어나다 : 정수경展’이 6월30일(수)까지 세종갤러리에서 열린다.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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