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얼음

                                        박남준

옷을 껴 입듯 한 겹 또 한 겹
추위가 더할수록 얼음의 두께가 깊어지는 것은
버들치며 송사리 품 안에 숨쉬는 것들을
따뜻하게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철모르는 돌팔매로부터
겁 많은 물고기들을 두 눈 동그란 것들을
놀라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얼음이 맑고 반짝이는 것은
그 아래 작고 여린 것들이 푸른빛을 잃지 않고
봄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겨울 모진 것 그래도 견딜 만한 것은
제 몸의 온기란 온기 세상에 다 전하고
스스로 차디찬 알몸의 몸이 되어버린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쫓기고 내몰린 것들을 껴안고 눈물지어본 이들은 알 것이다
햇살 아래 녹아내린 얼음의 투명한 눈물자위를
아 몸을 다 바쳐서 피워내는 사랑이라니
그 빛나는 것이라니

―

밤사이 봄비 내리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따뜻한 얼음」이라는 시와 긴 겨울을 지내며 쪽문의 창을 하나 더 내달았다는 내용의 「적막」이라는 박남준 시인의 시를 읽었다. 적막은 시집의 제목이기도 하다. 다음날엔 영하의 날씨로 눈이 내려 부엌창으로 본 북한산풍경이 아름답다.

나는 1973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재수생으로 지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던 집에서 수유리 새 주택단지로 이사를 했다. 연합고사가 처음 치러지는 해였고 나름대로 나는 성적도 좋아 희망한 고교에 진학했다. 여러 해를 지나면서 언니와 나는 겨울대비 김장을 했다.
이상하게 연탄불은 자주 꺼트렸다. 돈이 있는 만큼 성냥을 사서 화약이 터트려질 때마다 나무에 불이 조금씩 붙어 연탄에도 불이 붙었다. 겨우 피워낸 연탄불이 훌러덩 반쯤 넘게 타버려 밑불로 써가며 레루로 옮기기도 했다. 그때에 번개탄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연못 속에 붕어들이 또 추위가 걱정되어 무단히 테라스로 옮겨두었다. 아뿔싸. 이 말은 아버지가 자주 했었다. 삼촌과 바둑을 두다가 자주 터트리는 아쉬움이 섞인 그런 말투였는데 내가 또 아뿔싸를 터트렸다.
수유리의 겨울 어느 날 아침을 기억한다. 바께쓰 어항에 놀던 붕어와 물이 몽땅 얼어버렸다. 그 시절 「따뜻한 얼음」의 이치를 깨달았더라면 붕어들을 그대로 연못에 살게 할 걸 후회가 된다.

그 집 주인에게 쫓겨나기 전까지 나는 3년 즈음이나 살았다. 그 집은 지붕 전체가 옥상이었다. 여름에 더운 건 참겠는데 겨울엔 무척 추웠다. 난방은 연탄레루뿐이었는데 가스가 방으로 들어와 나는 여러번 쓰러졌다. 언니가 동치미 국물을 떠다 주어 나는 그걸 마시고 차가운 마루에 누워있었다. 오빠가 약국문을 두드려 약사에게 시계를 맡기고 동생이 연탄가스를 마시고 쓰러졌는데 깨어나게 하는 약을 달라고 하여 받아왔다고 했다. 오빠가 한번은 너무도 다급한 마음에 맨발로 약국으로 뛰었다고 했다. 연탄가스가 무서워 아예 안 읽는 책들을 몽땅 태워 가며 방구들을 데웠다.
연탄불이 꺼졌던 밤사이를 지낸 아침에는 웅크렸던 어깨가 안 펴졌다. 나는 속으로 연탄 아궁이 구조도 모두 따로 있고, 연탄가스도 방으로 새어 나게 되어 사람 죽겠다고 설계한 집장수에게 푸념을 했다. 하얗고 눈도 똘망했던 해피도 목욕탕에서 잠자다 쓰러졌다. 오빠방의 연탄레루가 목욕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시인이 노래한 따뜻한 얼음은 참 공감이 가므로 점점 나의 사유가 늘어졌다. 다음에 옮긴 주거지역에서는 침대에서 지내었는데 뜨거운 물을 넣은 핫팩을 껴안고 잤었다. 가장 춥게 지내었던 그 겨울들을 회상하며 나에게 따뜻한 얼음이었던 언니와 오빠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진다.

― 추신
지난달에 나는 마장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사람들이 호수에 돌을 던졌던 자국이 여러 곳에 남아있었다. 살얼음이 언 마장호수가에 돌을 던져보았던 그 호기심도 이제부턴 버려야겠다.

김순조 기자  dd99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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