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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춘상 선생의 6.20 의거 ― 상징물 건립 추진8월 31일 소록도에서 준비모임을 갖기로
이택규 기자 | 승인 2019.08.29 19:43
이춘상기념사업회는 ‘이춘상 6.20 의거 상징물 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하여 이춘상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준비과정을 거쳐 본격적인 활동에 박차를 기하고 있다.
사실상 2010년 이전부터 꾸준히 활동해온 사업회로서는, 공식적으로는 6월 26일 첫 준비모임과 광복절을 하루 앞둔 8월 14일에 세미나를 개최한 성과를 바탕으로 8월 31일에 소록도에서 준비모임을 거쳐 한 단계 더 나아간 모습을 갖출 것으로 보인다. 본 사업회의 성공적인 활동을 위하여 오는 10월 18일에는 이춘상기념사업회 확대구성을 위한 발기인대회의 일환으로 한 세미나 개최를 앞두고 있기도 하다.
 
‘이춘상기념사업회’에서는 이춘상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조선 제1의 흉악범 안중근, 제2는 이춘상”
 
1942년 6월, 일본의 신문보도 제목이다. 이춘상은 소위 ‘문둥이’인데다, 당시 일제 총독부가 밝히지 않은 때문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이춘상은 당시 소록도의 일본인 원장인 ‘주방(수호)’을 살해했다. 주방은 일본 천황이 임명한 당시 조선 최고의 관리였다.
 
<나를 찬양하라>
1933년에 소록도 원장으로 부임한 ‘주방’은 8년에 걸친 공사 끝에 6천 환자를 수용하는 시설을 확장하고 의기양양하여, 문둥이 코에 마늘씨 빼먹듯 환자 돈으로 자기 동상을 세워, 한 달에 한 번 모든 환자가 절하며 자신의 찬가를 부르게 했다. 환자들은 노역과 굶주림으로 1년에 430명씩 죽어나갔다.
 
<이 칼을 받아라>
1942년 6월 20일. 아침 8시에 모든 환자가 동상 앞에 도열했다. 원장이 차에서 내려 걸어왔다. 이때 한 청년이 바람처럼 나타나 소리쳤다. “너는 환자에게 못된 짓 했으니 이 칼을 받아라!” 칼은 단번에 주방의 심장에 꽂혔다. 안중근처럼 무서운 솜씨였다.
 
<한센 환자들은 잊지 않았다>
살해 직후 조선총독부와 일본 황실, 신문은 하나같이 주방 원장의 공덕 치하에만 열 올리고, ‘태어날 때부터’ 흉포한 자에 의한 불의의 참변이라며 억울해했다. 이춘상은 곧 잊혀졌다. 외부로 알려진 때는 37년 후인 1979년, 같은 환자(심전황)가 펴낸 「소록도 반세기」에서이다.
 
<제2의 안중근>
일본인 재판관이 물었다. (왜 죽였는가?) “6천 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다.”
그는 경북 상주 출신으로 한센병이 들어 만주까지 갔다가 서울에서 장물보관죄로 붙잡혀 왔다. 그의 부친은 김창숙과 함께 상해임시정부에 드나들며 독립운동을 한 분이다. 이춘상은 이듬해 봄에 스물일곱 살의 젊은 나이에 사형되었다.
77년이 지났다. 그를 기리는 비를 소록도에 세우려는 첫 모임이 비로소 8월 말 소록도에서 열린다.
8월 31일, 소록도에서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모여 “이춘상 6.20 의거 상징물 건립추진”을 위한 준비모임을 갖는 역사적인 현장이 기대된다.

이택규 기자  we-e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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