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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관잡록(稗官雜錄)](11) 나철 선생 순명 102주기
변자형 기자 | 승인 2018.09.12 18:44

홍암(弘巖) 나철(羅喆)은 1863년 전남 보성군 벌교읍 출생으로 본명은 나두영(羅斗永), 개명은 나인영(羅寅永)이다.

29세에 문과에 급제하여 외교문서를 담당하는 승문원(承文院)의 부정자(副正字)와 왕명을 출납하는 승정원(承政院)의 가주서(假注書)를 역임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때에는 조세징수의 개혁을 위한 징세서장(徵稅署長)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고 귀향하였다.

1904년에 오기호, 이기, 최전 등 호남 출신의 지사들과 함께 비밀결사인 유신회(維新會)를 조직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후에는 오기호 등과 을사오적으로 불리는 이완용(학부대신), 이근택(군부대신), 이지용(내부대신), 박제순(외부대신), 권중현(농상공부대신)을 처단하기 위해 오적암살단(자신회)을 결성하였다.

1907년 자신회(自新會)의 이홍래·강원상 의사가 사동(寺洞)에서 권중현의 암살에 실패하자 나철 선생이 배후를 자청하여 전라도 지도(智島)에 10년 유형을 선고받았으나 고종의 특사로 1년 후 풀려났다.

나철은 1909년 1월 15일 재동(齋洞)에서 예로부터 있어온 단군교(檀君敎)를 중광(重光)하여 초대 교주가 되었고, 이듬해인 1910년 4월 7일 대종교(大倧敎)로 개칭하고 북간도에 지사를 설치했다. 이로부터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전통을 근간으로 국권회복을 위한 대종교의 지난한 항일투쟁이 전개되었다.

일제의 폭압 속에서 대종교는 1914년 5월 본사를 간도 화룡현으로 옮겨 항일운동을 지속해나갔다. 대종교의 급속한 확장에 당황한 일제는 1915년 종교통제안(宗敎統制案)을 공포하고 대종교를 독립운동단체로 규정하여 불법화하였다.

53세 되던 1916년 8월 15일(음력) 나철은 황해도 구월산 삼성사에 들어가 순명삼조(殉命三條)의 유서를 남기고 조식법(調息法)으로 순교, 순국하였다. 이후 대종교는 2대 교주 김교헌, 3대 교주 윤세복으로 법통을 이어가며 중광단(重光團)을 조직하고 무오독립선언을 반포했다.

대종교에서는 나철 선생이 순명 조천(殉命朝天)한 음력 8월 15일을 가경절(嘉慶節)로 정하여 4대 경절 중 하나로 기념하고 있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2016년 고향인 벌교읍 금곡마을에 홍암나철기념관이 개관하였다.
서일, 김좌진, 박은식, 신채호, 김규식, 김구, 조소앙, 박찬익 등 수많은 애국선열과 독립지사들이 대종교의 토양 위에서 커나갔다.
9월 12일 오늘은 홍암 나철 선생 순명 102주기 되는 날이다. 홍암 대종사의 숭고한 정신과 자주 독립사상의 계승은 후손들의 몫이다.

변자형 기자  asadano@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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