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칼럼/오피니언 오피니언
문화유산해설사와 평생학습
한국여성연합신문 | 승인 2017.10.12 22:19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100년 된 붉은 소나무 숲이 펼쳐져 있고, 티끌하나 없는 맑은 공기에 까치들이 나무 사이를 오가며 지저귀고, 가지런한 기와와 화려한 단청, 하늘로 솟아있는 추녀선을 따라 마음도 둥둥 떠오르는 것 같은 산성의 궁궐이 나의 일터이다. 노란색 봉고차가 도착하고 병아리 같은 아이들이 꼬물거리며 내린다. 버스에서 내린 어른들이 붉고 푸른 편안한 옷을 입고 연인, 가족, 친구들과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선다. 이들을 위해 행궁 해설을 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이 일을 시작한지 벌써 1년이 지났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즐거운 일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 햇빛 속에 행궁을 향해 출근할 때 행복감에 휩싸인다.

이 행복감의 가장 큰 이유는 아름다운 자연 환경이다. 서울 도심과 확연히 비교되는 깨끗한 공기와 햇살 그리고 색깔이다. 사철 회색빛 빌딩에서 갇혀 살다가 푸른 나무숲과 하늘이 탁 트여있는 곳에 서 있다. 보라색 맥문동이 땅을 뒤덮었다가 어느새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다. 겨울에 피는 눈꽃에 눈이 부시고 소나무 사이로 넘어가는 석양은 온 하늘을 분홍색으로 물들인다.

행복감의 또 다른 이유는 성취감을 안겨주는 일에 있다. 해설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교육을 받았다. 행궁과 성곽을 답사하며 산성의 역사, 성곽이론 등을 공부했고 자체 시험인 해설사 시연 실기 시험도 통과했다. 해설 내용과 함께 성량, 발음의 정확성, 단어의 적합성, 문맥의 전달성, 태도(서비스 마인드), 자연스러운 몸짓(제스처), 단정한 복장 등을 평가했다. 그 이후 해설 대상에 대한 자료를 찾아 스스로 공부하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지식이 쌓였다. ‘남한산성’ 영화가 개봉되자마자 달려가서 보고 전쟁기념관의 병자호란 특별전도 놓치지 않고 본다. 강화행궁과 수원 화성 자료도 틈틈이 챙겨본다. 처음 방문하시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해설을 하다보면 짧은 시간이지만 교사와 학생의 관계가 형성되기도 한다. 해설이 끝나면 방문객들은 수업을 받은 것처럼 ‘수고했다’는 감사와 격려의 말씀을 전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전문직에서 느낄 수 있는 자부심도 자라게 된다.

해설사가 되기 위한 학력 조건은 없다. 그러나 평생학습을 하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2001년 해설을 시작한 홍민자(66세)씨는 50세에 중졸로 시작하여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거쳐 한국방송통신대학 관광학과에 입학했다. 한국사 능력시험에 합격하고 17년간 전국의 유적지를 발로 뛰며 학습한 결과 전문해설사로 우뚝 섰다. 초등학생을 위한 문화재 교육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하는 '역사 바로알기' 13주 코스까지 강사로 나서고 있다(e수원뉴스, 2017.7.14).

문화유산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관리하기 때문에 문화유산해설사가 되기 위해서는 시청, 구청, 군청 등 지자체의 홈페이지나 사시는 곳 근처의 문화원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검색해보면 채용 또는 교육 정보를 찾을 수 있다. 다만 현재 해설사가 활동할 수 있는 장소가 많지 않아 해설할 수 있는 곳을 더 발굴할 필요가 있다.

해설에 큰 경제적 보상이 따르지는 않는다. 임시직 또는 봉사로 일하는 경우도 많다. 기관에 따라 다르겠지만 해설 회당 2~3만원 정도로 시간당 학교 강사료와 비슷한 수준이다. 또 관광지의 특성상 해설 수요가 일정하지 않아서 해설사로 가족을 부양하기는 어렵다. 해설이 걸으면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운동이 되어 신체적으로도 이롭다. 약화되는 신체에 활기를 주고 자발적 지적 활동에서 오는 즐거움이 있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한 은퇴자들에게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문화유산해설사는 아름다운 근무 환경에서 특정 유산에 관한 지식을 쌓으면서 전문가로서의 자부심을 가지고 일할 수 있다. 일하러 가면서 즐겁고 행복한 마음에 휩싸이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은퇴 후에 다시 일하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니 더 이상 은퇴자가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현역으로 돌아왔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배명숙 남한산성행궁 문화유산해설사

한국여성연합신문  webmaster@kwanews.com

<저작권자 © 한국여성연합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여성연합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4537, 서울특별시 중구 명동길 80, 522호(명동2가, 가톨릭회관)  |  대표전화 : 02)727-2471  |  팩스 : 02)587-0708
등록번호 : 서울, 아03927   |  등록일 : 2015.10.07   |  발행인 : 정찬남  |  편집인 : 변자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변자형
Copyright © 2018 한국여성연합신문. All rights reserved.
Back to Top